◎장벽 탈출자 사살명령 혐의… 종신형 가능/공산 잔재 마지막 청산… 재판후 사면설도『호네커에 대한 재판은 정치보복이 아니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역사적 의무다』
모스크바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에리히 호네커(79)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 29일밤 독일로 송환돼 베를린의 모아비트감옥에 수감되는 순간 슈나렌베르거 독일연방 법무장관은 엄숙한 성명으로 「호네커 단죄」에 무게를 실었다.
호네커의 송환은 구 동독 통치시절 압제로부터 탈출하려는 동독인들을 사살하라고 명령했다는 협의때문.
그러나 내포된 의미는 그 이상으로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 동독 공산체제에 대한 심판이자 공산 잔재의 마지막 청산절차로 평가되고 있다.
아울러 2차대전이후 나치 전범들을 철저히 단죄한데서 볼 수 있듯 호네커 송환에서도 지난 시절의 과오를 얼버무리지 않고 정리하는 독일의 철저한 역사의식이 두드러진다.
이같은 대세와는 달리 『과거의 상처를 덧나게 하지말자』는 무익론도 있다. 정치권에서도 재판을 통해 동서독간의 비밀들이 마구 폭로될 경우 파장이 적지 않으리라는 점을 들어 재판 반대의견을 은근히 개진하는 정치인도 있다.
이중 가장 적극적인 호네커 옹호론자는 호네커 자신이다. 그는 지난 6월 「호네커와 극적인 사건들」이라는 회고록을 발간,자신에 대한 재판을 「중세의 마녀 사냥식 정치박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는 『사실 명령을 내린바 없다』면서 『국가지도자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무작정 단죄받아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심지어 구 동독 지도자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있다는 비아냥까지 던지고 있다.
TV로 생중계된 호네커의 초라한 도착모습은 상당한 동정론을 불러 일으킨듯하다.
그러나 공항 및 모아비트감옥 주변에 『호네커 재판반대』를 외치는 시위대가 10명을 넘치 못했던 사실에서 볼 수 있듯 동정론은 적극적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재판은 이변이 없는한 연내에 시작될 전망이다. 주타 림바흐 베를린 법무장관은 예비심리의료검진본격재판이 연내에 이루어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호네커의 형량은 국경 탈주자 49명의 살해 지시혐의가 인정되면 최고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송환될 경우 자살하겠다던 호네커가 순순히 수감된 것은 재판후 사면을 약속받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림바흐 장관은 이를 부인하며 엄청난 재판을 거듭 단언하고 있다. 하지만 호네커를 주모스크바 칠레대사관에 보호했던 칠레정부는 『독일과 적절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논평,막후교섭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세계뉴스의 중심에 서게 된 호네커는 8년동안 동독을 철권 통치한 강고한 공산주의자이며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을 구축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89년 10월 동독 민중봉기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된후 동독 주둔 소련군기지로 피신했다가 91년 3월 심장질환치료를 이유로 모스크바로 망명길에 올랐다.
그후 통일 독일정부는 호네커 송환을 소련측에 줄기차게 촉구해왔다.
당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인도적 이유로 옛 동지의 입국을 막을 수 없듯 도덕적 이유로 송환할 수 없다』며 독일측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소련붕괴 와중에서 옐친의 러시아정부가 추방의사를 밝히자,호네커는 자신의 딸이 살고 있는 칠레로 망명하기 위해 모스크바 주재 칠레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칠레정부는 피노체트 쿠데타(73년) 당시 칠레의 좌익 인사들에게 호네커가 망명처를 제공했기 때문에 「보답차원」에서 그를 보호해왔다.
그러나 독일과의 우호관계 및 원조가 아쉬운 러시아,칠레로서는 독일의 송환압력을 수용치 않을 수 없었던 듯하다.<이영성기자>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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