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론인물 실재여부 파악늑장/제일측 「확신근거」의문 그대로검찰이 23일 정보사부지 매매사기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함으로써 6공 최대사기사건의 수사는 마무리 됐으나 개운치않은 뒷맛은 여전히 남아있다. 불하사기를 처음 계획한 것으로 알려진 곽수열씨(45),청와대 비서관을 사칭한 민영춘씨(52),제일생명과 정건중씨(47) 일당을 연결해준 박삼화씨(39) 등 토지전문브로커 3명이 검거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검거되더라도 검찰이 밝힌 사건의 구도에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18일간의 장기수사 끝에 내린 결론은 수사착수 당시부터 예상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배후가 있다고 보면 의혹이 더 많다」는 예단을 갖고 출발했던 검찰의 수사는 예상대로 전문토지사기꾼들의 고위층 빙자사기라는 결론에 당도한 셈인것이다.
검찰이 전 합참군사자료과장 김영호씨(52) 일당→성무건설 정건중씨 일당→제일생명으로 이어지는 사기극의 연결구도를 규명함으로써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들을 상당부분 해소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국민은행 압구정 서지점 정덕현대리(37)의 교묘한 예치금 인출방법 파악,매매계약 과정에서의 윤성식상무(51)의 개인적 비리와 사기극에 휘말린 경위,김영호씨의 안양 군부대부지사기 등 사기행각규명,정씨 일당이 빼돌린 4백72억여원의 사용내역규명 등은 검찰수사의 개가로 평가될만하다.
그러나 수사초기 관계기관간의 공조부족과 정씨 일당의 사기행각만 지나치게 부각시켜 『김씨 일당에게 속았다』는 정씨측 주장을 사기꾼들의 떠넘기기 작전으로 치부함으로써 김씨 일당으로부터 시작된 사기극의 실체파악에 혼선을 빚었던 점 등은 검찰수사의 흠으로 지적된다.
특히 사기꾼들이 배후세력인 것처럼 들먹인 사람들의 실재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채 『가공인물』이라는 답변으로 일관하다 뒤늦게 실재인물임이 밝혀지자 『사기꾼들이 사칭한 것일뿐 배후는 아니다』고 발뺌한 점 등은 배후세력 존재여부의 규명의지가 없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구속자들이 청와대 안기부내의 비호세력으로 들먹여진 김모,곽모씨 등은 현직공무원이며 「청와대 직원 민영춘」이라고 사칭했던 민영춘씨도 곽수열씨로부터 14억원을 분배받은 실재인물임이 드러났다.
검찰은 또 국방부에 김영호씨의 사기행각을 제보한 사람이 윤성식상무(51)라고 계속 말해오다 수사 막바지에 국방부가 이 사건을 알게된 시점 등이 문제되자 『윤 상무가 아니었다. 착오가 있었다』고 정정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아직도 의혹의 눈초리를 쉽게 거두지 못하고 있다.
우선 막강한 정보력을 갖춘 대생명보험회사가 무엇을 믿고 6백60억원이라는 거액을 선뜻 내놓을 수 있었겠느냐는 원초적 의문이 그대로 남는다.
제일생명이 정씨 일당의 달콤한 유혹에 속아 거액을 지급했다는 검찰의 설명은 세세한 부분까지 꼬치꼬치 따지는 보험회사의 관행에 익숙한 국민들을 쉽게 납득시키기 어렵다.
검찰은 이같은 의혹해소의 고리로 ▲윤 상무의 인간적 허점과 비리 ▲국방부장관 고무인이 찍힌 매매계약서(1월21일자)에 대한 맹신 ▲통장 도장을 자신이 갖고 있다는 방심 등을 들고있다.
그러나 88년이래 사옥부지물색 과정에서 5번이나 사기당할뻔한 제일생명이 매매대상부지의 소유자와 불하의 현실성여부를 직접 확인하지 않은채 소유권 이전등기도 안된 상태에서 2백30억원을 예치하고 4백30억원의 약속어음을 발행했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특히 ▲박남규회장(72) 하영기사장(66) 등 제일생명 고위층이 윤 상무로부터 보고를 받아 매매계약 체결사실을 알고도 끝까지 은폐하려 한 점 ▲지난해 12월23일 정씨 일당과 첫매매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1월21일자의 매매계약서와 같은 확실한 물증이 없었다는 점 ▲윤 상무가 지난 5월 중순 사기낌새를 채고서야 처음으로 아는사람을 통해 국방부에 정보사 이전계획 유무를 확인한 점 등은 「믿는 구석」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또 김영호씨가 1월21일 정씨 일당으로부터 계약금으로 76억5천만원을 받은 뒤 즉시 달아나지 않다가 말썽이 되자 홍콩으로 달아났고 이돈을 돌려준 점도 처음부터 사기를 계획한 사람의 행동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어 실제로 불하가 추진되지 않았느냐는 추측을 낳게 한다.
이밖에 김인수씨 일당이 사례비 등으로 받은 돈을 명화건설 사업비 등에 즉시 지출한 점 등도 사기탄로 가능성에 대비,돈의 사용처를 숨기려하는 사기꾼들의 관행과 달라 실제거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배후가 없다는 것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나 배후여부를 규명할 수 있는 단서를 애써 외면해온 검찰의 수사태도와 이 사건에 나타난 여러 증후를 검토해볼때 아무도 선뜻 『배후는 정말 없었구나』하고 믿을 수 없다는 점이 뒷맛을 개운치 않게 한다.<김승일기자>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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