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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와 정치개혁/한상진칼럼(밖에서 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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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와 정치개혁/한상진칼럼(밖에서 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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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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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를 보는 눈을 날카롭게 다듬어야 되겠다. 이것의 극복없이는 민주화도 어렵고 경제발전,사회발전도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것을 극복하려는 정치의식이 요구된다. 매사에 일본을 무작정 따라갈 것이 아니라 적어도 정치적으로 앞서 가려면 특히 부정부패를 보는 우리의 눈은 매섭고 결연한 의지에 차 있어야 한다.두말할 필요없이 우리가 문제시하는 부정부패는 어느 곳에나 있기 마련인 단순한 개인적 사기,횡령,투기 밀수 같은 범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문제시하는 것은 정경유착의 함수이자 발생학적으로 정치권력안에 깊숙이 내장된 부정부패다. 정치개혁의 부진으로 인해 특히 전환기에 만연되는 구조화된 정치부패,관료부패,사회부패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점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러시아일 것이다. 전환기의 혼란과 시장경제의 도입에 편승한 관료의 공금착복,이권개입,내부거래에 의한 특혜 등 온갖 부정부패가 창궐하고 있다는 것이다. 브레진스키는 최근 논문에서 IMF차관 이전 수년간 서방은 소련에 80∼1백20억달러 규모의 경제지원을 했는데 거의 전부가 부패한 관료들에 의해 착복,완전하게 실종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중국 역시 관료부패의 사회주의적 유형을 벗어나지 못한다. 관료주의를 통제하려는 당의 정책은 계속되고 있지만 정치개혁 없는 경제발전은 바로 권력집중 때문에,칼자루를 쥔 관료의 부정부패를 한없이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대한 도전으로서 80년 봄 북경 천안문 학생시위가 터졌다. 시위당시 북경대학 심리학과 조사결과에 의하면 67%의 중국인은 학생들의 부정부패 규탄구호에 공감한 것으로 나왔다. 생산,서비스,사무노동자는 72∼76%의 지지를 보였다. 그럼에도 이것이 무력진압된 이후 오늘날 부정부패가 줄고 있다는 증거는 찾기보기 힘들다.

상황은 권위주의의 유산이 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유사하다. 얼마전 국가비상 사태를 부른 페루,오늘날 대통령을 둘러싼 선거자금 부정시비로 정국이 들끓고 있는 브라질이 대표적 보기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같이 평화적 정권교체로 정치개혁에 앞서가고 있는 남미국가에 비해,경제적으로 성공한 동아시아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오히려 부정부패가 더심하다는 가설도 성립가능하다.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 기득권에 집착하는 보수세력이 강하고 정치개혁이 지지부진한 탓이다. 이것은 일본,대만,한국의 정치부패를 보면 비교적 쉽게 수긍할만한 것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터진 정보사 부지매매 사기사건도 규모와 시기 및 방식에 있어 지난 「수서사건」에 못지 않게 징후적이다. 최종 수사결과가 어떻게 발표되건 간에 대중의 관심이 사건의 배후로 쏠리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에 의해 부정부패를 보는 대중의 눈이 이미 날카롭게 형성되어 있음을 반영한다.

우리는 여기서 검찰의 엄정수사를 촉구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담보하는 정치적 압력을 시민사회가 어떻게 가동시킬 것인가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리라 본다. 특히 두가지 가능성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정치부패의 만연에도 불구하고 집권 자민당을 줄기차게 지지하는 일본 유권자의 멘탈리티를 벗어나 정치개혁을 투표에로 연결시키는 독자적 시민문화가 시급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자민당은 일본 열도를 온통 뒤흔들었던 리쿠르트 사건의 와중에서 실시된 90년 2월의 총선에서도 유효투표의 46%를 얻는 압승을 거두었다. 또한 다케시타,나카소네 전 총리를 포함하여 이 사건에 깊숙이 연관된 14명의 정치인이 쉽게 재선되었다. 이것은 다른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선거를 통한 부정부패의 응징과 정치개혁의 촉진이 없다면 자유민주주의의 성숙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모든 부정부패는 비판적 여론 등 밑으로부터의 견제 감시장치가 미흡한데 원인이 있음에 유의하여 시민의 참여를 적극 촉진시키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70년에 청설된 미국의 비정치·비영리 시민조직으로서 28만명 회원의 회비와 헌금으로 운영되는 「커먼 코즈」(Common Cause)의 부정부패 감시 고발 활동은 좋은 보기라 하겠다.

또한 우리의 현실에서 부정부패 정보제공에 대한 보상제도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미 국세청은 규약 7623조에 의해 탈세 등에 대한 정보제공에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내부거래 사기 방지법」은 내부거래로 부당이득을 거둔 사람은 그 이익의 세배까지를 벌금으로 내고 그 벌금의 10%를 정보제공자에게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시민이 부정부패를 직접 감시·청취·고발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사회제도를 새롭게 건설,쇄신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어떤 미래를 만들것인가. 부정부패 청산을 위한 확고한 정책강령을 정치권에 요구해야 할때다. 금융실명제는 언제까지 보류할 것인가. 구조개혁 없이 보수대 연합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집권당에 경종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우리 시민사회의 잠재력은 일본보다 크다. 이것을 발전의 지렛대로 삼는 지혜가 요구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개혁·사회개혁을 위해 시민적 압력을 가동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오고 있지 않는가.<서울대교수·뉴욕 콜롬비아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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