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선택이 손쉬운 것은 없다. 안전과 위험의 가능성이 혼재해있고 이해득실이 얽혀있다. 이래서 단안을 내려야하는 위치에 있는 정치지도자에게 비전,역사감각,결단력,리더십 등이 요구된다. 또한 국민적 콘센서스가 필요하다.지금 북한의 김달현 정무원 부총리겸 대외경제위원장이 대우·삼성·럭키금성·현대·선경·포철·화승 등 남한의 7개 재벌그룹 13개 공장을 「산업시찰」하고 있다.
북의 김 부총리는 남측 재계의 경쟁적인 대북경협 열기를 느꼈을 것이다. 관심의 초점은 24일 노태우대통령이 그를 접견할때 그가 전할 것으로 알려진 김일성주석의 메시지 내용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 대통령의 이에 대한 대응이다.
김 북한 부총리는 판문점의 남북 분계선을 넘자 첫 기자회견에서 북한측의 입장을 명시했다. 『북남 사이의 협력교류문제들이 합의되기 이전이라고 경제협력을 시범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길을 열어나가자』
말하자면 정·경분리다. 그가 「시범사업」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의미는 더 축소된다. 선택적인 우선사업주의라 하겠다.
이에대해 남한측의 입장은 최각규부총리의 만찬사에서 재확인됐다. 『그동안 남북고위급 회담을 통해 화해·불가침 및 교류협력합의서 채택과 공동위 구성 등 진전이 있었으나 아직 부속합의서 채택,핵문제,고향방문단 사업실천 등의 문제가 논의중이다. 이번 방문이 이러한 현안을 해결하는데 좋은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현안문제와 경협의 분리불가를 시사했다. 이 문제와 관련,이동복 남북고위회담 정부대변인은 『경협에 앞서 핵문제가 먼저 타결돼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바로 이것은 한·미간의 양해사항이다. 이 대변인이 이를 강조한 것은 미국측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때맞추어 한·미 양해사항에 변화가 없다고 재확인했다. 지금 미국의 대북한 정책의 주요관심사는 북한이 개발중인 것으로 믿고 있는 핵능력의 사전제거다. 미국은 스스로뿐만 아니라 한국은 물론 일본에 대해서 남북한의 상호임의 핵검사협정 체결을 대북관계 개선의 사실상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고 이에 3국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이 문제가 부속합의서 채택,고향방문단 교환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긴밀한 동맹내지 우방관계를 유지해온 미·일과의 외교사항이므로 우리의 재량폭이 크지 않다. 북의 김 부총리는 최각규부총리를 공식초정,정부는 이것을 북한이 남한정부를 경협의 공식 창구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렇게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북의 경제총책인셈인 김 부총리는 남한경제인들이 요구하는 대북 진출여건 조성과 관련하여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북의 대남 경협전략의 골간인 민간기업과의 선별적인 합작추진계획에는 변함이 없는 것같다. 북은 남북고위회담에서 지금까지 원칙적인 양보다 타협은 없었다. 북의 변화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없는데도 무조건 북과의 경협을 추진하는 것은 민족감정에 편승한 감상적 유화정책일 수 있다. 기업모험주의나 또는 단순한 과당경쟁일 수도 있다. 우려되는 것은 북한이 남북한 고위급회담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 핵사찰 부속합의서 타결에 긍정적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산가족 방문단과 공연단의 교환방문을 갖고 지나치게 신경전을 벌일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북한은 대남 전략에 전향적인 수정이 필요한것 같다.
정부는 북한에 대해 바로 이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런데 김 부총리의 내방에 대한 선물로 제한된 범위에서 시범사업에 대해 협력을 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사업은 대우가 북의 삼천리사와 계약한 남포공단 합작사업계획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은 미국·일본 등 대서방 협상에서 「쇠가죽처럼 질긴 협상자」로 악명이 높다. 한국과의 협상에서도 입증이 됐다. 정부는 대북협상에선 정석게임을 해야할 것 같다. 어설픈 변칙이 역사의 조류를 그르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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