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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벨 「이임변」/윤석민 국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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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벨 「이임변」/윤석민 국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2.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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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은 20세기말미를 장식한 역사적 대사건인 동구권 민주화의 주역중 주역이었다. 이 세기적 인물이 20일 대통령직을 물리고 야인으로 돌아갔다.지난 89년 11월부터 12월까지 철옹성같던 후사크 공산독재정권에 맞서 사자후를 토하며 결국 체코의 「벨벳(매끄러운) 혁명」을 이끌어낸 인물. 지식인으로서 시대적 요청인 「양심의 소리」를 거부하지 못한채 투옥을 무릅쓰는 반체제 활동가였다가 일약 1국의 통치권자가 된 반전의 주인공.

극작가로서 명성을 날리던 그를 두고 일부 이상주의자들은 체코에서 플라톤의 철인정치 구현을 논했다. 인간성을 말살하고 서로간에 불신과 증오만을 깊게한 공산통치의 굴절된 역사를 치유하는데 하벨의 인본적 이상과 도덕은 제격이란 지적이었다.

그런 그이기에 냉철한 현실주의자들의 잣대로는 이미 「한시적 존재」라는 평가도 없지 않았다. 혁명으로 고조된 국민적 「흥분」이 냉엄한 현실정치로 돌려지기 까지의 과도기를 맡은 「그랜드마스터」처럼.

이들은 현실과 괴리된 하벨의 이상주의적 사고가 스스로의 명을 재촉했다고 말한다. 자유와 박애정신에 따라 결정한 무기판매금지 조치가 단적인 예라고 한다. 이같은 조치는 세계유수의 체코 군수산업을 무력화시켰을 뿐 아니라 산업밀집지인 슬로바키아 경제에 타격을 가해 배타적 민족주의를 키워냈다.

도덕에 바탕을 둔 하벨의 「정치적 결벽성」은 그가 임시 대통령직 1년을 포함한 3년간의 대통령 재임기간중 주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당을 만들지 않은데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 6월 총선을 앞두고 1백10여개의 전당이 난립했지만,하벨은 정치라는 조직력보다는 양심에 근거한 개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겨야 한다.

그의 「투명한」노선의 외교정책에서도 여실했다.

하지만 40여년간의 동서대립에서 이겨 「승승장구」하는 서방측에게는 하벨이 주장한 나토·바르샤바 해체와 중구공영권 창설 등은 「순진한 이상론」으로 비쳤을 뿐이다.

그는 「이임변」에서 『인간으로서의 내가 아닌 내가 지키고자한 가치에 대한 지지를 잃어 사퇴한다』고 밝혔다.

자기방어와 임기응변에 능란한 마키아벨리적 자질과 영합을 끝내 거부한채 사직하는 하벨을 보내며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적 이상은 결국 이상으로만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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