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인적교류 90년대 들어 “봇물”/72년 “물꼬”… 총 3천4백명 왕래/고위회담 계기 각분야 비약증가… 앞으로 더 늘듯북한 김달현 정무원 부총리가 19일 서울을 방문함으로써 남북간의 인적교류 문제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김 부총리의 이번 방문은 분단이후 남북한의 고위 당국자가 일방 정부의 공식 초청에 응해 상대지역을 공식방문하는 첫 사례여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또 김 부총리가 도착 기자회견 등을 통해 「나라의 통일에 이바지하기 위해 남행길에 올랐음」을 분명히 했듯이 핵·이산가족·경협문제 등의 해결에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남북한 인적교류는 지난 7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시작됐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남북간 인적교류는 91년 6월말 현재 남북을 모두 합해 연인원 3천3백80여명의 실적을 쌓았다.
70년대에 남에서 북을 방문한 사람이 2백80명이었고,북에서 남을 다녀간 사람이 2백28명이었다. 이는 물론 남북 당국이 공식 파악한 숫자. 양측 비밀접촉을 위해 비공식적으로 상대지역을 방문한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다.
80년대 들어서는 우리측의 2백40명과 북측의 1천5백55명(수해물자 전달요원이 다수를 차지)이 각각 상대지역을 다녀갔다.
90년대가 되자 남북간 인적교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정치적인 화해무드 조성에 의해 90·91년을 거쳐 올해 6월말에 이르는 동안 우리측의 5백20명과 북측의 5백59명이 각각 서로의 땅을 밟았다.
이를 좀더 자세히보면 우리측의 경우 90년에 3건 1백83명,91년에 10건 2백37명,92년에 3건 1백명이 북한을 방문했다.
반면에 북한에서 90년에 4건 2백91명,91년에 3건 1백75명,92년에 2건 93명이 서울에 왔다.
이같은 남북간의 인적왕래는 크게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세 분야에 걸쳐 이뤄져왔다.
이중 정치부문은 남북간에 가장 먼저 인적교류를 시작한 분야이다.
남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한 양측간 최초의 인적왕래는 지난 72년 3월28일과 31일 사이에 이뤄졌다. 7·4 남북 공동성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극비 평양행 준비차 한적의 정홍진 예비회담 대표가 분단이후 처음으로 평양의 공기를 호흡한 것이다.
이어 북측의 김덕현 북적 예비회담 대표가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의 서울방문을 준비하기위해 4월19일부터 21일까지 단독으로 서울에 왔다.
이같은 준비를 거쳐 이 부장이 5월2일부터 5일까지 수행원 3명을 대동,평양을 다녀왔다. 또 북측 김 부장의 대리인 박성철 제2부 수상이 5월29일부터 6월1일까지 4일간 서울을 다녀갔다.
남북사이의 정치적 왕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남북고위급 회담이 개최되고 나서부터이다.
지난 90년 9월4일 분단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정무원 총리가 서울에 와서 이뤄진 1차 회담이후 이 회담은 연인원 6백30명이 참가,지난 5월8일까지 모두 7차례 이뤄졌다.
고위급회담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개최됨으로써 경제·사회 문화분야의 인적왕래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됐다.
이밖에 91년 4월22일부터 5월5일까지 채문식의원 등 25명이 제8차 IUP 총회 참석차 평양을 다녀왔고 유종하 당시 외무부차관 등 10명은 91년 9월6일부터 13일까지 평양에서의 77그룹 아주그룹 회의에 참석했다.
사회문화부문에서는 지난 72년 8월29일부터 한적 대표 54명이 참가,평양에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 1차 본회담이 남북인사들의 첫 왕래가 된다. 또 그해 9월12일에는 북적 대표단 54명이 역시 북측 인사로는 처음으로 공개리에 서울을 방문했다.
양측 적십자사가 추진했던 이산가족 고향방문단은 85년 9월20일에 비로소 실현됐다. 예술단을 포함해 양측 각각 1백51명의 민간인들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다.
체육분야의 교류도 성사돼 91년 5월6일에는 이명성단장 등 북측 70명이 서울에 와서,5월10일에는 오완건단장 등 우리측 70명이 평양에 가서 각각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 평가전을 가졌다.
여성계에서는 여연구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 북측 여성 15명이 분단이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91년 11월25일 서울에 와 한 세미나에 참가했다.
이와 함께 서울소망교회의 곽선희목사는 남북종교 교류협의를 위해 91년 9월24일 북한을 단독 방문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남북경제교류를 우한 우리측 경제인들의 방북이 줄을 잇고 있다.
경제분야에서는 지난 84년 9월29일부터 10월4일 사이 북측의 우리에 대한 수재물자 인도를 위해 인도 북평 판문점 등으로 수백명의 북한 사람들이 왕래했다.
이어 89년 1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을 전격 방문,금강산 개발을 합의하고 와 세상을 놀라게 했다.
91년 7월27일에는 우리 쌀의 북한 반출을 위해 고영용씨 등 4명이 북한을 다녀왔고 같은해 10월13일에는 권갑택 과기처 국장 등 3명이 평양의 UNDP 두만강개발사업 추진회의에 참가했다.
올해 1월에는 김우중 대우회장이 방북,남포공단 건설을 북측과 합의했다.
김 회장은 이때의 인연으로 김달현부총리의 서울방문을 성사시켰다.
이밖에 한태혁 북한 대외경제외국장 등 3명이 두만강 개발회의 참가를 위해 올해 2월말 서울을 다녀갔고 김덕중 서강대 교수 등 18명은 4월28일부터의 평양 동북아 경제포럼에 참가했다.<신효섭기자>신효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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