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 후보 적기선정·케네디가등 지지 단합 보여【뉴욕=김수종특파원】 의붓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집념과 타협을 몸에 익힌 빌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가 16일 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 지명 수락연설을 통해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빌 클린턴을 11월 총선의 기수로 내세운 민주당은 지난 80년 카터의 비극적 패배이후 백악관 탈환의 호기를 맞았고 뉴욕전당대회를 통해 정권교체 필요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전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즉 ABC방송의 여론조사결과 드러난 클린턴 인기의 급상승과 로스 페로의 퇴조는 미국인들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악화시키는 한편 페로로부터 돌아가서는 여론을 민주당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효험을 드러낸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학생단체 대표로 백악관에서 존 케네디 대통령과 만나면서 야망을 키워온 클린턴은 시대적 여건으로 볼때 월터 먼데일이나 마이클 듀카키스보다는 유리한 입장에 있을뿐 아니라 정치적 결정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등 전략적 성공도 거두고 있다.
우선 클린턴은 지난해 4월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쟁에 이겨 인기가 치솟았을때 92년 선거는 외교가 아닌 국내문제가 이슈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민주당의 거물들이 주춤거릴때 클린턴은 이름없는 아칸소주지사로서 예선에 뛰어든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그의 판단은 맞아떨어졌고 1년후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다. 지난 88년 듀카키스 지명 전당대회에서 형편없는 연설로 『꺼지라』는 대의원들의 야유를 받았던 클린턴이 4년후 쟁쟁한 동부 민주당 거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면서 파워를 휘어잡은 것은 집념과 판단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클린턴은 부통령 후보선정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주당의 성격상 부통령은 대개 노선상으로나 지역적으로 대통령 후보를 보완해주는 후보를 찾아왔다. 먼데일은 여성인 페라로를 선정했었고 듀카키스는 남부출신인 로이드 벤슨을 러닝메이트로 삼았었다. 그러나 클린턴은 자신과 동년배이자 같은 남부출신인 앨 고어 상원의원을 택했다. 정치적 색깔의 균형을 맞추기보다 같은 베이비붐 세대가 처음 팀을 짜고 등장했다는 점에서 대담한 접근을 한 것이다. 클린턴은 고어를 선정하면서 상원 의장석이나 지키는 부통령을 만들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선거전에서 든든한 고어를 취약한 퀘일과 대조적으로 부각시킬 의도를 내비치면서 공화당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다.
클린턴은 또 부통령 후보선정의 타이밍을 매우 적절히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대회 수일전 고어를 선정발표함으로써 전당대회 분위기가 부통령 후보 하마평으로 분산되는 것을 막았을 뿐 아니라 고어로 하여금 뉴스메이커가 되게함으로써 정치적 관심을 민주당으로 돌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때문에 전당대회는 부시 대통령의 경제실정을 공격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셋째,남부출신 대통령후보로서 케네디 상원의원과 쿠오모 뉴욕주지사 등의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아낸 것은 11월 본선을 앞두고 얻은 큰 자산으로 꼽을 수 있다. 15일 밤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입증되었듯이 케네디 신화는 여전히 민주당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케네디 상원의원의 지지연설과 로버트 케네디 미망인 등 케네디 식구들이 클린턴 피켓을 들고 서있는 모습은 뉴잉글랜드 선거운동에서 큰 무리가 될 것이 틀림없다.
빌 클린턴에게 다가오는 부담은 노련한 공화당이 클린턴의 「품격」 문제를 파고들때 과연 어떻게 대적하느냐이다. 또 제리 브라운의 지지를 받아내지 못함으로써 본선거의 커다란 기반인 캘리포니아 득표전략이 과제가 돼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