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총장기능은 고매한 학자의 역할이상이 기대된다. 교육자일뿐 아니라 학문과 대학행정의 선도자로서 행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수 그리고 대학의 대표이자 보호자로서 활동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설득과 수습의 수완도 발휘해야 한다.그러나 오늘날 우리 대학의 총장들은 대학을 대표하는 체면유지자로 존재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경우가 너무 많다. 외부압력이 거셀때 어쩔 수 없이 순치당했던 초라한 모습과 관행이 불행하게도 여전이 유전되고 있는 것이다.
독재정치와 권위주의 통치하에서 대학총장들의 졸업삭사를 분석한 한 학자는 「시국을 감안한 현실감각의 고취,후진성 극복에 대한 상식적 견해의 토로,인격수앙에 대한 낡아빠진 훈화뿐」으로 「고루한 상식을 반추하면서 자기만족에 도취해있었다」고 꼬집은 것을 기억한다. 한국 지성의 향로개척에 대한 확신을 찾아 볼 수 없었다는 뜻이다.
6·29선언이후 대학의 민주화·자율화의 장은 마련됐다. 우여곡절 끝에 총장직선제까지도 도입됐다. 그러나 진짜 역량과 문제의식을 갖춘 참신한 지성이 대학행정의 수장으로 등장한 것을 보기는 정말 어려웠다.
지난 14일 제12대 연세대 총장으로 선임된 송재교수의 총장관과 포부는 그런 의미에서 볼때 기성 총장들과 참으로 다른데가 많다. 특별한 관심을 갖게한다. 그의 문제의식과 현실감각은 가히 신사고적이랄만해서 반갑다.
우선 기여입학제 도입에 대한 송 총장 피선자의 접근사고에서 현실감각이 돋보인다. 여타 대학인의 생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대교협이나 대학 교무처장들이 93년 또는 94년 획일실시를 밀어붙이는 것과는 달리 「대학의 자율화가 좀더 진척된후 대학특성에 맞게 고려돼야 한다」는 전제조건 제시가 대학인으로서는 특이한 발상이라 할만하다. 현실감각과 국민정서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움이 엿보인다.
대학도 경영을 아는 이가 행정을 맡아야 한다는 그의 경영총장론 또한 미국 등의 선진 대학에서 이미 일반화 된 것이지만 우리 현실에서는 앞선 사고라 할만한다.
더욱이 그가 총장으로 선임된후 짧은 소감에서 밝힌 「무시험 전형에 의한 입학생 선발방식 도입 구상」은 잘만된다면,고교생들을 입시지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고교의 전인교육을 촉진할 수 있는 입시제도의 일대 혁명이 될 수 있다는 큰 뜻이 담긴 것 같아보여 큰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또 그것은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해온 정부가 「우리 교육 근반세기」동안에 11번이나 바꾸고 뜯어 고치면서도 아직까지 우리 실정에 적합한 대학입시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것을 대학이 앞장서서 시도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의 구상이 꼭 실현됐으면 좋겠다.
이글을 쓰는 나는 새 총장이 될 송 교수와는 일면식도 없었고,연세대의 동문은 더구나 아니다. 하지만 그는 연세대에 건전한 새바람을 일으킬 선도적인 총장이 될 자질을 물신 풍겨 큰 기대를 하게되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은 백낙준·유진오·김활란박사들처럼 교육 거두시절과 같은 「총장영웅시대」는 아니다. 그렇다고해서 한국 지성과 사회를 이끌어 가야할 대학의 총장들이 더이상 무기력하고 무능한채 안주만 하고 있어야할 그런 시대도 아니다.
『한국의 대학도 빨리 잠에서 깨어나 21세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송재 총장피선자의 말이 총장피선의 단순한 소감이 아니기를 바라는 소이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할 것이다. 한국대학이 처한 「위기」 탈출에 송재 새 총장의 신사고가 참된 기여를 했으면 한다. 그것은 연세대만의 영광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 대학,특히 사학들의 새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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