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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국민들이여…/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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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국민들이여…/이성춘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2.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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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부정과 범죄가 없는 나라는 없다. 문제는 탈법행위가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규명하고 처벌하는가로써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할 수 있다.선진국의 경우 아무리 큼직한 부정사건,정치와 관련있는 사건이라해도 국민의 불쾌감은 오래가지 않는다. 넓게는 정부,좁개는 검찰의 규명의지와 수사력을 믿기 때문이다. 검찰은 냄새가 나는 사건일수록 밑바닥까지 파헤치니 의혹의 꼬리가 남겨질리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은 그게 아니다. 집권자나 검찰은 언제나 『철저하게 규명하겠다』고 호언하지만 대부분은 「오리무중격」으로 만드는게 상례화되어 오고 있다. 즉 집권세력에 불리하거나,또 꼭 덮어줘야할 필요에 의해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끝내고 「이정도로 끝」 선언을 하고 만다. 이러니 국민의 분노와 개탄이 가라앉기는 커녕 의혹만 증폭되어 오래오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10년마다 정치와 경제가 유착된 대형비리 스캔들이 터진다는 일본의 경우를 보자. 정치인의 뇌물접수와 관련,70년대에는 록히드사건,80년대는 리쿠르트사건,올들어 사가와 규빈(좌천급변)사건 등이 터져 전 일본 열도가 들끓었지만 검찰에 수사에 나서자 국민들은 안도하며 조용히 지켜본다. 중요 부정사건 때마다 등장하는 동경지검 특수부,아마 이처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사법기관도 드물 것이다. 이 특수부는 어떠한 정치권력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 입장에서 가차없이 불법과 부정을 파헤친다. 따라서 젊은 검사가 록히드사건과 관련,다나카(전중) 전 총리를 전격 구속했을 때 일본 국민들은 그 용기와 단호함에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오래전의 일은 차치하고라도 5공때 장영자 거액어음 사기사건과 명성그룹의 탈세사건,6공 들어와 수서 비리사건 등 모두 그토록 나라전체를 뒤흔든 엄청난 부정사건이었지만 하나도 시원하게 파헤쳐진 적이 없다. 물론 검찰은 수사 종결때마다 더 이상의 배후와 끄나풀이 없다고 했으나 이를 그대로 믿는 국민들은 지금도 별로 없다. 더구나 어처구니없는 것은 수백억원에서 1천억원이상의 사기사건의 주범들이 누구하나 참회하기는 커녕 오히려 『억울하다』 『나는 희생양이다』 『모략에 걸렸다』고 결백을 주장하고 있으니 국민들이 누구를 신뢰하겠는가.

요즘 나라전체를 들끓게 하고 있는 군정보사터 땅사기사건만해도 그렇다. 문외한인 국민쪽에서 봐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한두가지 아니다. 먼저 땅주인인 국방부의 태도다. 그동안 정보사 이전을 놓고 논란끝에 작년에 이 터를 매각키로 국무회의의 결과 대통령 결재를 받은뒤 이를 취소,백지화했다는데 그럼에도 몇차례 매각관련 사기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취소했다면 이 방침을 널리 공지해서 건달과 사기꾼 같은 파리들이 끓지 않게 했어야 하지 않은가.

다음으로 신용을 생명으로하는 보험회사인 제일생명측의 반사회적 작태다. 보험회사마다 부동산 전문팀을 보유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가는 그들이 합참의 1개 과장만을 믿고 사기꾼들과 이런 대규모 거래를 했겠는가. 더구나 수백억원의 회사자산을 투입하는 일에 사주와 사장이 의당 참여,정밀숙의를 했을 것은 상식인데도 상무 전담의 모르는 일이라고 거짓말한,중앙은행 총재 출신답지 않은 태도는 국민을 우롱하는 것일 뿐 아니라 뭣인가 배후를 애써 감추려는듯한 인상만을 주고 있는 것이다.

또 아직도 2백억원이상 행방이 묘연한데 지금까지 잡힌 관련 사기꾼들마다 『억울하다』 『나도 이용당했다』고 하는 것도 배후에 대한 의혹만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국민들을 당혹케하는 것은 이 사건의 진짜 진실과 배후여부는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는데 검찰 일각에서 이 사건을 단순사기사건으로 잠정 규정한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흘러 나오고 있는 점이다.

필자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이런 식으로 끝나게 된다면 국민들 가슴에 또 하나의 의구심만 안겨주게 되고 정부나 검찰에 대한 불신감만 더해 갈게 분명한 것이다.

이런 상황속에 노태우대통령이 「한점 의혹없이 철저한 규명」을 지시하고 또 민자당이 국회의 특별조사권을 발동할 용의가 있다고 한 것은 일응 기대해 볼만한 일이다. 따라서 민자당의 국조권 발동발언이 순수히 국민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면 야당은 조건없이 하루빨리 국회를 정상화시켜 공동 조사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해서 아무데도 확신을 갖고 기대하지 못하는 국민들에게 그래도 국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 아! 불쌍한 국민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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