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행동력 갖춘 집행기구 전환 추진/분쟁 중재 고등판무관 설치·감군 합의도【헬싱키=원인성특파원】 9,10일 이틀간의 일정으로 핀란드 헬싱키에서 막을 올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의는 탈냉전이후의 유럽 질서에 맞게 이 회의체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모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옛 소련의 공화국들을 포함한 유럽전역과 미국 캐나다 등 52개국에서 50명의 정상이 대표로 참석한 이번 회의는 선언만으로 끝나던 말잔치의 차원을 넘어 구체적인 행동을 수반하는 준상설기구로의 전환을 모색하기 위해 여러달에 걸쳐 실무자들끼리 빈번한 논의를 가져왔다.
그 결과 이번 회의는 CSCE가 동서냉전시대에 양진영이 자리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했던 것과는 달리 유럽역내의 분쟁을 조정하고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내는데 일단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5년 헬싱키 정상회의로 시작한 이 회의는 그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한 동서진영이 한 자리에 모여 평화와 협력의 방안을 모색하는 포럼의 성격을 띠어왔다. 소련과 동구의 변혁이 진행되고 있던 지난 90년 파리에서 열린 두번째 정상회담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승리를 자축하고 이에 따른 CSCE의 위상변화를 모색했다.
이 회의를 계기로 프라하에 사무국을 두고 분쟁예방센터와 민주제도 연구 및 인권사무소를 각각 빈과 바르샤바에 두는 등 회의체에서 집행체로 전환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회의의 성격이 유엔이나 유럽공동체(EC)처럼 조약에 의한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강제성과 집행력을 갖는 기구로 탈바꿈 하기에는 화려한 구성에 비해 한계를 갖고 있다.
2년만에 다시 열린 이번 정상회의는 전혀 새로운 여건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동서냉전이라는 분쟁의 소지가 사라진 대신 옛 소련과 유고 등의 인종분쟁·유럽을 휩쓸고 있는 극우민족주의 열풍 등 과거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양상의 분쟁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회의는 이러한 분쟁에 CSCE가 조정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번 회의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사항은 유럽역내 분쟁에 대한 CSCE의 평화유지활동이다. 10일 발표될 최종선언을 앞두고 각국 정상들은 역내의 분쟁에 대해 CSCE가 주도적으로 평화유지활동을 벌이도록 하며 이를 위해 나토나 서유럽동맹(WEU)의 병력을 활용하기로 대체적인 합의를 보고 있다.
이같은 합의는 선언의 남발에 그치곤 했던 CSCE가 구체적인 행동력을 갖춘 집행기구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거창한 포장에 걸맞는 알맹이를 담는데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CSCE의 평화유지활동은 유고사태 같은 유혈분쟁에 적극 개입,평화를 만들어내는 유럽경찰의 역할까지는 상정하지 않고 있다. 평화유지군의 파견은 분쟁 당사자들의 합의가 있을 때만 가능하도록 엄격하게 규제할 계획이어서 중재활동의 범주를 벗어나기는 힘들다.
이번 회의에서 이루어질 의미있는 합의사항은 인종문제를 다룰 고등판무관의 설치이다. 이는 역내에서 고조되고 있는 인종분규의 원인을 사전에 조사 파악하고 중재함으로써 유혈충돌로의 비화를 막자는데 목적이 있다. 새로 설치될 고등판무관에는 유고사태에서 중재활동을 벌이고 있는 영국의 캐링턴 전 외무장관과 체코의 하벨 대통령이 거론되고 있다.
이밖에 이번 회의는 유럽의 재래식 군비감축에 상당한 의견접근을 보고 있다.
CSCE는 그동안 유럽내 군사훈련의 제한과 상호참관·재리식 장비의 규모제한 등에서 합의를 이끌어냈었다. 이번 회의를 통해서는 회원국 군 규모의 상한선을 설정하는데 대략적인 합의가 예상된다. 현재까지 조정된 바로는 총병력수를 러시아 1백45만,우크라이나 45만,벨로루시 10만,독일 34만5천,영국 26만,유럽주둔 미군은 25만명 이내로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예상대로 이러한 합의를 하게될 경우 이번의 정상회담은 탈냉전이라는 시대변화에 맞춰 CSCE가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는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CSCE가 유럽전체를 통괄하는 「작은 유엔」으로서 집단 안보기능과 국가간 협력체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인지는 낙관하기 어렵다. 조직의 성격자체가 강제력을 갖고 있지 못한데다 기존의 EC나 나토,서유럽연맹(WEU) 등 다양한 조직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가는가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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