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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위선양」/이문희(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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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위선양」/이문희(화요칼럼)

입력
1992.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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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서울올림픽이 우리에게 가져다준것은 자부심이었다. 일제,광복,6·25로 이어지는 이 세기에서 이때처럼 자신을 떳떳이 세계에 내보인적은 없었다. 그것은 바닥과도 같이 살아온 지난 역정에 대한 도전이었고 멋있는 성취였다. 대회직후 한국일보사가 실시했던 여론조사에서 44.9%의 응답자가 88이 자신에게 미친 가장 큰 의미는 자부심이라고 꼽았다. 그후를 어떻게 잘 끌고 갔느냐는 것은 우리들의 문제이지 88 그 자체는 아니다. 올림픽은 그만큼 우리민족에겐 기념비적 기회였음이 분명하다.그럼 그토록 「성공적인」 올림픽이 우리에게 가져온것은 무엇인가.

흔히 일본은 64년 동경올림픽 그 자체보다 포스트 올림픽에서 성공을 거둔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패전일본의 이미지를 선진 일본으로 바꾼 결정적 계기로 만들었고 그때 동원됐던 국내적 합일을 그대로 일본의 것으로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다.

64년 당시 동경의 분위기를 묘사한 외신기사 가운데 이런것도 있었다. 『동경의 택시에서 지갑을 창밖으로 던져보라. 당신이 호텔에 도착하기전에 지갑이 먼저 와있을 것이다』.

일본은 올림픽의 기운을 특유의 검소·자제·질서와 접목시켜 「새로운 일본」으로 후속시키는데 그 나라의 사람,제도가 총동원된 분발이 있었다.

○「88도약기회」 놓쳐

88올림픽도 분명 세계에 우리를 과시한 기회였다. 1백60개국 1만4천명의 선수단이 서울을 찾은 것만이 아니라 전세계가 TV를 통해 한국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러시아 기자는 그때 본 서울은 지난 몇십년간 알고 있던 서울과 너무나 판이했다고 그때의 충격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대소수교 등 북방외교가 급진전한 또다른 요인이 올림픽에 있다고 까지 했다.

우연인지 아니면 공교로운것인지 88년이후 우리에게 나타난것은 너무나 판이한 것들이었다. 자긍이 지나쳐 자만,「해냈다」에 도취된 해이가 온사회를 뒤덮듯이 나타났다. 과소비가 사회적인 문제가 된것도,거드름 해외여행도,근로의욕 상실,수출경쟁력 상실로 「용이 아니라 지렁이」란 소리가 밖에서 들려 온것도 88이후였다. 어느 외지는 숫제 『한국의 경제위기는 한국민의 과소비,올림픽이후 갑자기 대국이 된듯한 기분에 약화된 절제의식 때문』이라고 못박기도 했다.

엄청난 경찰력 등 공안기능을 가졌으면서도 치안부재,「총체적 난국」을 선언해야했고 그 화려했던 올림픽의 장 서울의 대기는 이제 육안으로도 질식을 느낄 정도가 됐다. 그 사이 자만이 좌절로,해이는 무질서로,무력감이 자나쳐 위기감을 외치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왔다. 이 속에서 우리의 리더십은 나라를 이끄는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채,올림픽이란 거대한 호재를 선용해보겠다는 의지조차 까맣게 잊은채 하고 한날 권력보존을 위한 편짜기 편가르기에만 몰두해왔다. 어처구니 없게도 우리는 너무나 철저히 올림픽 호재를 공으로 보냈다.

○국위도 미래형을

지금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선 4년전 우리의 흥분이 재연되고 있는것 같다. 우리도 만만치 않은 선수단을 보내고 정부는 TV3사의 방송시간을 연장,사실상 종일방송을 허용한다는 보도다. 그것도 3사가 제각기 위성중계를 해 또한번 올림픽 바람이 휩쓸고 갈 참이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하나의 국제행사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것이 88과 바르셀로나의 엄연한 차이다. 그 둘이 혼동될리도 없겠지만 혼동되어서도 안된다. TV로 종일 생중계를 하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논란일수가 없다. 우리 형편을 감안해 에너지나 나라의 시간이 남아돌면 하는 것이고 형편이 그렇지 못하면 안하는 것이다. 어느 구석에도 「올림픽이니까」하는 핑계는 있을 수 없고 행여 남의 나라 올림픽으로 축처진 우리 국민들의 신을 돋우어 보겠다면 착각이기전에 기만이다.

앞서 지적했던 조사에서 「88올림픽에서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31.7%가 국위선양,30.7%가 국민적 일체감을 들었었다. 「국위선양」에 남달리 애착을 가지며 살아왔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매우 있을법한 반응이다. 하지만 21세기가 말끝마다 인용되는 시점에서 국위선양의 의미를 어떻게 새롭게 설정해야하는가는 88이라는 「국위선양」을 완수한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국위」의 내용을 과거형에서 미래형으로 바꿔야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양질의 민주화가 실현되고,일본에 구걸하지 않는 경제와 기술상황을 이룩하고,교육과 타협이 기조를 이루는 높은 시민의식이 지배하는 사회,욕심을 더한다면 맑은 물 맑은 공기가 진지하게 추구되어 세계가 우리를 부러워한다면 그 이상의 국위선양이 또 어디있겠는가.

88이 지난지 4년이나 되고 노 대통령의 임기가 다돼 어렵다면 다음 지도자부터라도 88을 후속하는 국가목표가 제시됐으면 한다. 목표의 제시뿐 아니라 그것이 대북문제든 경제든 모든 정책에서 일관성 있고 공평하게 유지되어 국민이 헷갈리지 않고 불평없이 따라가 나라의 커다란 흐름이 형성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일체감일수도,국력일수도,올림픽 정신인 화합일수도 있다. 북치고 꽹과리치고 법석을 떨면 모아지는 의사화합이 아니라 절로 따르는 화합,그런 방향제시가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절실하다.<편집담당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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