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판도라의 유전자/김창열칼럼(토요세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판도라의 유전자/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7.04 00:00
0 0

요제프 멘겔레는 별명이 「죽음의 천사」로 알려졌던 나치전범이다. 근 50년동안 그를 추적해온 독일과 이스라엘은 지난 4월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외신은 이 소식을 이렇게 전했다.­멘겔레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군의관(대위)으로 유대인 40만명의 학살과 생체시험에 간여했으며,전쟁뒤 남미로 도피,85년에 익사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독일 검찰은 최근 그의 익사체가 뼈와 그의 아들로부터 채취한 유전자 지문(DNA)을 감식한 결과 익사체가 멘겔레임을 확인한 것이다. 감식을 맡았던 유전 지문법의 창안자 알렉 제프리스 교수(영 라이세스터대)는 이번 감식의 정확도는 99.997%라고 말했다.

DNA(디옥실리보 핵산)는 생물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으며 그 짜임새가 개체마다 다르다. 이를 정확하게 해독할 수만 있다면,만인부동인 지문처럼,개인식별과 범죄수사에 활용할 수가 있다.

이 점에 착안하여 미군은 지난 6월부터 「개표」(개인 인식표)를 DNA 방식을 바꾸고 있다. 입대하는 모든 장병은 소량의 피와 침을 채취해 등록해야 한다. 만일 그가 전사하는 경우,살점이 한 점만 남아 있어도 그를 분간해낼 수가 있다. 앞으로 미군묘지에 무명용사의 묘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장담이다.

그러나 이런 효험에도 불구하고 「DNA 개표」에는 반대 여론이 높다. DNA 지문을 수사에 활용하고,법정증거로 쓰는데 대한 시기상조론도 만만치가 않다. 이를 규제한 입법을 끝낸 주가 여럿이며,연방의회에도 규제법안이 나와 있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한 해답의 일단을 앞의 멘겔레 사건에서 찾을 수가 있다. 손끝 문양에 불과한 지문과는 달리 DNA는 너무나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다.

멘겔레의 경우에서 보듯,DNA는 어떤 개체의 혈통서나 같다. 동물행동학은 이를 활용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히고 있다.

지금까지 90%의 조류가 「1부1처」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DNA를 감식해보면 한 둥지의 새끼라도 대개 10∼30%는 씨가 다르다. 그만큼 「간통」이 흔하다는 얘기가 된다. 사정은 포유동물도 비슷해서 「1부2처」는 2%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물음 끝에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아기의 DNA를 채취해서 등록하는 제도가 있다면 어떨까. 우리 주민등록증을 받을 때 지문을 찍는 것과 같은 것이니,상상 못할 질문은 아니다.

그래서,그런 제도가 생긴다면,아기가 병원에서 바뀔 염려가 없다. 미아는 잠깐 작업으로 부모를 찾을 수가 있다. 머리카말 한 올만 있어도 범인을 찾아낼 수가 있다. 정인숙 사건의 후일담 같은 친자 확인소송도 간단히 해결된다.

대신 이 제도는 「아내의 부정」을 적잖이 밝혀낼지도 모른다. 당장 부정의 상대방을 찍어낼 수가 있으므로,간통쌍벌죄는 이런 경우에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DNA 정보는 이런 친자관계,혈연의 친소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유전병이나 유전적결함의 인자도 들어 있다. 사람의 지능이나 자질과 기질을 결정하는 인자가 해독될 날도 곧 올 것이다. 그리하여 취직이나 대입선발 때,또는 배우자를 고르는데 DNA 감식을 원용한다고 하면,인종차별,성차별 이상의 「DNA 차별」이 생길 수도 있다. 실제로 미 의회 기술평가국(OTA)의 조사보고는 이미 DNA 감식결과 생명보험 거절당한 예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DNA 감식은 「판도라의 상자」로 일컫기도 한다. 그리스신화에 있는 그대로 한번 뚜껑을 열면,재앙을 가져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DNA는 나도 모르는 많은 「비밀」을 담고 있다. 정보화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는 사실상 프라이버시가 없다고 하지만,DNA는 그 프라이버시의 궁극에 있는 것이라 할 수가 있다. 그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살아야 한다면,그것은 조지 오웰의 「1984년」과 다를 것이 없어진다. 유전정보의 수집과 활용,보존과 폐기를 엄격하게 규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DNA 감식이 범죄수사에 유용할 것은 틀림이 없다. 우리 검찰이 서둘러 DNA 감식기술을 개발하고,실험실까지 차린 것(한국일보 7·1 석간 13면)은 잘한 일이다. 극히 한정된 범죄감식에만 쓸 것이기 때문에,「1984년」까지 거들 것은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DNA 감식은 외국에서도 아직 표준이 될만한 감식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그 정확도도 샘플에 따라서는,그리 높지 않을 수도 있다.

멘겔레의 경우에서 보인 그 정확도 99.997%는 만인부동이라는 지문 감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DNA 감식은,사전에 많은 사람의 DNA를 수집해야 그 활용가치가 높아진다. 이 이치는 지문 감식과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DNA 감식이 다른 분야에서도 흔해질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DNA 감식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를 미리미리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첫째 요청은 DNA 감식기술이 익숙해지기까지는 그 증거능력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더 근본적인 것은 DNA 정보의 오용과 남용,악용을 예방하며,DNA 감식을 함부로 할 수 없게 하는 등의 규제장치가 제때 갖추어져야겠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우리는 행정전산망의 개인정보가 시중에 나도는 세상을 살고 있다. 법의 규제조차 애매한채 전화도청과 우편물 검열이 행해진다. 생각해보면 전국민이 지문을 찍어야 하는 주민등록제도도 당연한 것만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는 프라이버시를 부인당하고 있다. 어항속 금붕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DNA 감식이란 말을 듣고 지레 걱정을 한다.

헌법상의 기본권인 프라이버시의 확보와 개인정보의 보호가 이제는 마땅히 민주화 일정에 올라야겠다는 것이 그 걱정의 뜻이다.<상임고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