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이 1일 서울과 동경에서 동시에 발표한 「무역불균형 시정을 위한 실천계획」을 읽어본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착잡하다. 일본측이 「실천」은 차치하고 역조개선의 의지조차 처음부터 갖고 있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우선 그동안 협의과정에서 한국측이 강력히 요구했던 「한일 산업기술협력재단」의 경우,그 설립에는 가까스로 합의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내용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재단설립의 주체를 민간에 떠 넘겼을 뿐 아니라 재단규모도 당초 목표액 2억달러에서 10분의 1도 훨씬 못되는 1천6백60만달러로 크게 축소함으로써 일본 정부가 근본적으로 대한 기술이전에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의 첨단기술을 한국에 이전하는 목적을 지닌 이 재단의 설립기금을 강제성 없는 민간 출연을 통해 모금토록한 점이다. 이는 재단설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재단설립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만드는 것은 마찰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별도의 재단을 각각 설립토록 한 것은 재단운영의 비효율성을 예고해주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또한 우리측이 강력히 요구했던 의류,신발,피혁 등 대일 수출의 주종품목에 대한 관세인하문제도 일본은 UR의 교섭진전을 보아가면서 논의하자고 회피한 반면 한국에 주재하는 일본상사의 수출활동을 허용한 것은 「혹을 떼려다가 혹을 붙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한국의 종합상사에 비해서 자본금과 지사수가 월등히 많은 일본 종합상사들이 한국내에서 수출활동을 할 경우 한국상사들의 해외 영업기반이 잠식당할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일이다.
물론 이번 협상과정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와있는 한국의 건설업체에게 일본의 공공 공사참여를 위한 제3국 공사실적을 인정함으로써 대일 진출의 길을 연 것은 하나의 성과라고 할 수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서있지 않아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결국 지난 1월 노태우대통령과 미야자와(궁택희일)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의 합의에 따라 6개월동안의 교섭끝에 작성된 「한일 무역불균형 시정을 위한 실천계획」은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로 막을 내렸고,그 점 우리의 실망을 감출 길이 없다.
「역조시정」이라는 과제를 놓고 한일 양국 정상이 만나서 합의한 사항까지 이처럼 무성의로 일관한 일본에 대해 어떻게 「우방」으로 신뢰할 수 있겠는지,우리는 심각하게 회의하게 된다.
일본은 PKO(유엔평화유지활동) 법안통과에서 보듯 경제대국에 걸맞는 국제적인 역할에 관심을 보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을 자임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시아의 이웃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하며,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으로부터의 신뢰구축이 필수적이라고 우리는 본다. 신뢰구축의 첩경은 그렇다면 무엇인가. 무역불균형의 시정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재삼재사 지적해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