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전된 내용없고 되레 각국 주권강화 논란/재정확충도 답보… “12월 회담서나 윤곽” 기대【리스본=한기봉특파원】 27일 폐막된 유럽공동체(EC) 정상회담은 유럽이 통합의 본궤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아직 공동체내의 여건이 충분히 성숙지 못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것은 공동성명에서 현안으로 제기됐던 사안들에 대해 원칙적 입장표명 외에는 통합작업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 진일보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데서도 입증된다.
이같은 결과는 무엇보다도 지난 2일 덴마크의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 거부이후 부각되기 시작한 하나의 유럽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EC 정상들의 논의는 우선 통합실현과 일정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 모아졌다. 덴마크 국민투표의 충격은 유럽 시민들에게는 「예스」와 「노」라는 분명한 선택을 진지하게 요구했고 각 회원국 정부에는 비준절차와 조약내용에 관련한 정치적 논란을 촉발시켰다. 또 법적으로는 이 조약의 발효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정상들이 공동성명을 통해 확실하고 조속한 조약비준 및 통합의지를 재 천명한 것은 통합회의론에 대한 「압력」인 동시에 공동운명체로서의 인식을 보다 확실히 대내외에 강조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조약의 수정없이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발효되려면 덴마크의 결정 번복이 필수적인 만큼 이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11개 회원국의 순조로운 비준이 시급하다.
오는 9월로 예정된 프랑스의 국민투표와 영국과 독일 등의 여야간 정치적 논란 등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앞날을 확실하게 단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현안들을 타결짓는다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며 애당초 기대하기 힘들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는 특히 공동체 기구와 각 회원국 주권과의 관계가 논란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이른바 「보조성의 원칙」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 문제는 보다 긴밀한 통합과정에서 EC 집행위에 위임된 막강한 권한이 개별국가의 주권영역까지 침해하고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즉 집행위원회는 어디까지나 회원국의 주권을 강화하는데 보조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비준을 앞둔 회원국 의회들이 쟁점으로 삼고 있는 부분으로서 EC의 질적 심화보다는 확대를 바라고 있는 영국 등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앞으로 6개월간 EC 의장국을 수행하게 돼있어 집행위의 권한은 약화될 게 거의 확실하다.
이번 회의에서는 또 금세기말 단일통화 창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EC의 재정강화 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됐으나 결론은 유보됐다. 현재 공동체 GNP의 1.2%인 EC예산 상한선을 97년까지 1.37%로 늘리라는 「들로르 패키지2」 계획에 대해 영국과 독일 등 순수 공여국은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절충안으로 목표기간을 2년 연장,99년까지로 하자는 집행위의 제의가 대체적으로 받아들여 졌으나 EC 예산 수혜국인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아일랜드 등 역내 빈국의 반발로 EC내의 남북문제는 쉽게 조정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역내 후진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스페인은 2배 이상의 「결속기금」이 증액되지 않는다면 비준을 거부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기까지 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4개국의 가입문제도 일단 조약비준이 완료된후 교섭을 개시한다는 쪽으로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다.
EC 통합의 내부 문제가 진통을 겪은데 반해 유고사태와 관련,EC는 공식 방위기구인 서구동맹(WEU)이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함께해 구주방위군의 유고파병 가능성이 가시화 됐다.
결국 EC는 각 회원국의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여부를 지켜본 뒤 오는 12월 영국 에딘 버러서 열리는 정상회담에서 보다 분명한 통합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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