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2년 8월3일 콜럼버스는 동방의 황금 나라를 찾아 스페인을 떠났다. 10월12일 그가 이끄는 3척의 선대는 「신대륙」에 닿는다. 스페인제국은 「황금의 세기」를 맞는다.꼭 5백년을 지나서,스페인은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주최한다. 이를 계기로,한때 「유럽의 아프리카」로 불렸던 스페인은 거듭 난 모습으로 통합유럽 무대에 등장하려 한다. 콜럼버스와 올림픽의 이미지가 겹쳐,세계는 바야흐로 「스페인의 해」를 맞고 있다.
그러나 열기 가득한 스페인을 다녀온 사람들은 콜럼버스의 「실종」 을 말한다.
지난 4월 개막한 세빌랴 박람회는 「콜럼버스의 날」(10월12일)까지 계속된다. 회장 가까운 강에는 콜럼버스 선대의 모형 배 3척이 떠 있다. 그런데도 후안카를로스 국왕의 개회사는 콜럼버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신대륙 발견」에 대한 세계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그것이 신대륙 원주민에게는 엄청난 재앙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지난날 그들의 영광에,그런 그늘이 있음을 깨닫고 있음이 틀림없다.
콜럼버스가 출항하기 몇달전인 4월31일 스페인은 가혹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다.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 10만명이 맨손으로 쫓겨났다. 이때까지 1천5백년이나 이어왔던 스페인의 유대인 사회는 그 뿌리가 뽑혔다.
역시 5백년을 지나서,스페인은 그 상처를 지우기 위한 화해의 손을 뻗고 있다. 내가 보기엔 이것이 올림픽 전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페인 국회는 종교의 평등을 규정한 법안을 마련했다. 이제는 유대교도 가톨릭 교회와 똑같은 특권을 갖는다. 세빌랴 박람회를 앞두고,카를로스 국왕은 이스라엘의 헤르초그 대통령과 나란히 유대교당을 찾았다. 지난 68년에야 다시 문을 연 마드리드 유일의 교당이다. 교당에는 5백년전 비극을 가슴아파하는 「슬픔의 기도」가 울려퍼졌다.
스페인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6조8천억원,세르빌랴 박람회에 8조원을 쓴다. 그 엄청난 규모에만 눈을 팔다보면 카를로스 국왕의 말 몇마디나 국빈접대 일정의 한 대목쯤은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5백년전 일이 지금 어떻다는 것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페인의 그 많은 투자와 「우정」(Friendship in Life)이라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주제는 그런 역사의식이 있기에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해야 옳다. 5백년전 상처가 지금껏 남아있다면 그 상처는 지금이라도 어루만져야 한다. 그처럼 역사는 언제건 정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대서양을 서진하는 동안,포르투갈 사람들은 아프리카대륙을 돌아 인도양을 동진했다. 드디어 그 발길은 일본에까지 닿는다. 서양의 조총도 함께 왔다.
그 조총을 가지고 일본 사람들은 이웃 조선을 침공했다. 1592년 4월의 임진왜란이다. 7년을 끈 그 전란의 참상은 다시 말할 것이 없다.
그로부터 꼭 4백년을 지나서,우리나라 신문들은 많은 지면을 「임란 4백년」 기획물로 채웠다. 그 많은 글들에 나타난 우리 학계의 연구수준이나 승패에 집착한 듯한 그 관점이 좀 어떤가 싶기는 했지만,그 처럼 역사를 정리하려는 노력은 평가해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 학계나 언론·출판계가 하나처럼 「임란 4백년」을 모른 채 했다는 보도(한국일보 6.16 문창재특파원)는 좀 뜻밖이다. 혹시 이 것은 일본 사람들의 의도적인 몰역사성을 말함이 아닌가.
대신 일본은 「임란 4백년」에 국제평화유지(PKO) 협력법안이란 것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거듭난 모습으로 통합 유럽무대에 등장하려는 스페인의 몸부림을 닮은 데가 있어 보인다. 그처럼 일본은 새모습으로 국제정치 무대에 등장하려 한다. 우리는 그 모습에서 「새로운 조총」을 본다.
일본 사람들의 의도적인 몰역사성은 65년 한·일 협정에 잘 나타나 있다. 구한말의 망국 조약들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말로 얼버무리고,유상·무상 몇억달러의 메모 한장으로 모든 배상책임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때의 경위와 우리나라 처지가 어떠했든 우리는 한·일 협정의 당사자요,몰역사의 공범이다. 그 때문에 구한말 조약들이 형식요건마저 못 갖추어 원인무효라는 사실이 밝혀지고,정신대문제가 새로 불거져 나와도 우리 정부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역사를 바로 정리 못한,몰역사의 값을 지금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PKO는 그 몰역사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 점에서 일본과 독일은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일 협정이 성립되던 65년 현재,서독은 6만1천여명의 전쟁범죄자를 기소,6천여명에 유죄,그중 12명에게는 사형을 선고했다. 이 뒤에도 전범소추가가 시효없이 계속되고 있음은 물론이지만,지난 1월 독일정부가 유대인 학살기념관을 개설한 독일정부의 자세 또한 일본정부의 몰역사성과 대비가 된다. 이 기념관 개관식에서 콜 서독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독일사람들에게 엄청난 짐이 되고 있으나,그 기억이 안정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 창조에 이바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콜 총리의 말이 결코 수사에 그치지 않음은 독일이 행한 전후배상의 실적이 증명한다. 그렇기에 독일 역시 PKO를 서두르며,이를 위해 헌법을 고친다고 해도,두려워 하는 이웃이 없다. 또 그 이웃들은 독일의 무력이 유럽 동맹구조를 벗어날 수가 없음도 잘 알고 있다.
독일과 일본,스페인의 1492년과 일본의 1592년을 대비해서 분명한 것은 일본 사람들의 의도적인 몰역사성이다. 일본의 PKO를 저어해 하는 까닭이 여기 있는 것이지만,우리 스스로 그들의 몰역사성을 수긍했던 일을 자괴할 줄도 알아야,우리쪽의 대비책이 바로 설 것 또한 틀림 없는 일이다.<상임고문>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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