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센터 「오염혈액」 사용 말썽/수혈받은 혈우병환자 2백56명 사망/미테랑정권 도덕성 먹칠【파리=한기봉특파원】 「세기의 스캔들」 「에이즈게이트」라고 프랑스 언론에 의해 이름 붙여진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재판이 파리법원에서 22일부터 시작됐다.
에이즈에 오염된 혈액임을 알면서도 지난 84년과 85년 2년 동안 이를 혈우병 환자에게 수혈하거나 혈액제제로 만들어 시판한 국립혈액센터의 전 책임자와 간부,감독을 소홀히 한 보건당국의 전 고위공직자 2명 등 모두 4명이 피고인석에 섰다. 앞으로 5주 이상 심리가 계속될 이 재판에 또 당시 총리였던 로랑 파비위스 사회당 제1 서기와 뒤파 전 사회부장관,에르배 전 보건부차관 등 거물급 인사들이 증인으로 소환돼 재판부의 심문을 받게 될 예정이다.
공판 결과에 따라서는 현 사회당 정부의 도덕성이 크게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프랑스 국민의 시선은 지금 이 재판에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의하면 2백56명의 혈우병환자가 에이즈에 오염된 혈액을 수혈받거나 혈액제제를 사용한 결과 사망했고 1천2백50여명이 에이즈에 감염됐다.
재판정에 선 피고인들은 이들에 대한 간접적인 살인이라는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게 됐고 정부 당국자들도 공범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일부 언론은 「국가의 범죄」 「합법적인 독살」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분개하고 있다. 에이즈환자의 가족들은 재판을 방청하며 또다시 상처를 입고 있다. 이 사건을 조사한 한 정부고문은 최근 「정부의 에이즈 수혈」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당시 관련 행정부처의 무책임했던 태도를 비난했다.
이 스캔들은 88년 한 에이즈환자가 정부를 상대로 제소했으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가 유력 시사주간지인 에벤느망지가 작년 4월 끈질긴 취재끝에 폭로함으로써 일반에게 알려졌다.
81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에이즈환자가 보고되고 다음해 이 새로운 질병이 혈액에 의해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프랑스 보건부는 83년 6월 모든 혈액 및 수혈센터에 대해 의심스러운 혈액을 헌혈받거나 수혈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국립혈액센터는 이 지시를 무시했고 84년 7월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혈우병 환자가 에이즈로 사망하기에 이르렀다.
국립혈액센터는 84년말부터 보관된 혈액이 에이즈에 오염됐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됐다. 그러나 이번 재판의 피고인중 핵심인물은 가레타 당시 국립혈액센터 소장. 그는 85년 5월 내부회의에서 혈액센터에서 생산된 모든 혈우병 치료제가 에이즈에 오염됐음을 확인하고서도 혈액 재고분을 계속 유통시킬 것을 결정했다.
이같은 비윤리적 결정이 국립혈액센터에서 시행된 것은 예산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또 모든 혈액을 파기할 경우 10억프랑의 손해를 감수해야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정부 보건당국 역시 태도가 불분명했고 결정을 주저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미 85년초 혈액오염의 가능성을 충분히 판단했으면서도 효율적이고 즉각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85년 10월에서야 비로소 기존의 혈액제제에 대한 판금조치를 내렸다.
증인으로 소환될 뒤파 당시 사회부장관은 이에 대해 『책임은 있으나 유죄는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가레타 전 소장은 공판 하루전 『나는 비겁한 조직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다』며 『정부 고위당국자에게 혈액 오염사실을 알렸었고 그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재판이 진행될수록 이 사건은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던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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