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국서 어떻게 그럴수 있나”/「괴상한 합법해석」에 비난 집중/“의회서 외국인 납치 금지 특별법 제정” 주장【워싱턴=정일화특파원】 미 하원 법사위 인권 및 헌법소위는 22일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15일 멕시코인 의사를 마약관련 혐의로 멕시코 현지에서 체포해 온 것을 합법이라고 판결한 것과 관련,「해외 범죄혐의자 납치문제」에 관한 청문회를 열고 이 문제에 관한 저명 국제법 학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레이건 빌딩 2237호 회의실에서 열린 이날 청문회는 대법원 판결에 직접적인 역할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양심」이 과연 외국인 납치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어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감시청문회(Oversight Hearing)라는 제목이 붙은 이날 청문회에는 조지 워싱턴대 국제법 교수 랄프 스타인하트,캘리포니아대(데이비스) 헌법 및 국제법 교수 마이클 글레논 및 뉴욕대 원로 국제법 교수 안드레아스 코웬펠드 등 3명이 증인으로 나왔고 돈 에드워스(민·캘리포니아) 소위원장,패트리셔 슈레더,크레이 워싱턴 등 법사위 소속 인권 및 헌법소위 의원들이 증언자들을 대상으로 이 문제와 관련한 광범한 질문을 던졌다.
이 청문회가 열린 것은 지난 11일 연방대법원이 『외국인 범법혐의자를 외국땅에서 체포해 와서 재판할 수도 있다』고 판결한 것이 당사국 멕시코는 물론 세계 각국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엄연한 주권국가의 시민을 당사국의 양해조차 얻지 않은채 미국으로 납치해 재판을 받게 할 수 있는가라는 극히 상식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범법혐의자 훔 베르토 알바레즈 매케인은 북부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개업의사로 지난 1990년 4월 미 마약단속반(DEA) 요원이 그의 병원에서 총기로 위협,납치해 미국으로 데려왔다. 그의 범죄혐의는 지난 89년 미 DEA 특별요원 엔리크 카마레나 살라자르와 알프레스 자발라 아벨라가 멕시코내 범죄조직에 의해 살해된 사건과 관련 됐다는 것.
매케인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문제는 매케인이 DEA 특별요원의 암살사건에 관련됐느냐의 여부가 아니고 그가 과연 국제법상의 아무런 절차도 거치지 않고 미국사법 요원에 의해 납치돼 올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90년 5월 매케인은 미국 정부가 멕시코 시민을 무단으로 체포해 오는 것은 불법이며 따라서 법정은 재판권이 없다는 이유로 기소취소 요청을 했었다. 지방법원은 매케인의 주장이 근거있다고 이를 받아들였다. 검찰은 이 문제를 다시 제9순회법원(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그러나 고등법원 역시 지방법원의 결정을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지난 11일 대법원은 이 사건에 관한 심리 결과를 발표하면서 지방 및 고등법원의 판결과는 달리 『미멕시코간 범인 인도협정에는 범죄혐의자를 납치할 수 없다는 조항이 없으므로 이를 불법으로 볼 수 없다』면서 「합법」 판결을 내렸다.
22일 청문회에서 첫 증언에 나온 랄프 스타인하트 조지 워싱턴대 교수는 이같은 대법원의 판결을 『경악할만한 무법인정』 『괴상한 자구해석주의』라고 강력한 비난을 연발했다.
스타인하트 교수는 대법원이 선례로 들고 있는 1886년의 커 납치사건과 1952년의 프리스비 납치사건을 조목조목 매케인 사건과 비교하면서 이 두 선례는 전혀 매케인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커는 미국시민으로 중대한 사기죄를 짓고 페루로 도망쳤던 자인데 이때 사설탐정이 그를 찾아내 몰래 미국으로 납치해다가 재판정에 세웠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첫째 DEA 요원과 같은 미국의 정규 국가사법 요원이 아닌 사설탐정이 잡아왔고 둘째 주권국인 페루가 이 사건에 대해 전혀 항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케인은 미국 정규 법집행자가 멕시코 정부와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체포해온 것이며 납치후 멕시코 정부는 이를 주권침해라면서 강력한 항의를 제기하고 있다.
스타인하트 교수는 국제법은 국제조약과 관습법으로 구성돼 있는 것인데 어떤 국제법도 주권국 영토를 들락거리면서 외국인을 범법혐의로 타국 경찰이 체포해 오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며 미 대법원 결정을 비난했다.
로웬펠드 뉴욕대 교수는 현재 엑슨사 사장의 납치사건이 미국 언론에 매일 관심사로 인용되고 있는 것을 예로 들면서 『납치는 개인이 개인에 대해 저지르는 범죄로 극악한 것으로 판정받는 법인데 어떻게 한 국가가 외국의 시민을 납치할 수 있느냐』고 역시 이를 비난했다. 그는 지난달 유럽을 방문하는 길에 『어떻게 미국인은 이웃나라 국민을 납치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 대답할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글레논 캘리포니아대 교수 역시 매케인 납치의 경우는 파나마 집권자 노리에가 장군과는 또다른 경우라면서 체포나 재판 모두가 불법이라고 증언했다.
노리에가의 경우는 일단 국가대 국가끼리의 전쟁상태에서 야기된 체포라고 할 수 있으나 매케인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들 증언자들은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하여 미 의회가 「개입」할 수 있는 길은 외국인 납치를 금지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국제관습법은 주권국가의 통치관할권을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또 미·멕시코간의 범인 인도협정은 범법 용의자를 타국 영토내에서 마음대로 납치해 오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 의회는 명문으로 국가의 외국인 납치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을 제정해 이 개념을 명확히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의회가 미 연방대법원의 이같은 「괴상한 자구해석주의」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국가가 타국의 주권·통치권을 침해해 범법용의자를 마음대로 납치해 오는 무법자를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멕시코 같은 타국이 미국시민을 납치하려 들려 해도 할말이 없는 것이라면서 의회가 이 문제에 적극 개입해 줄 것을 제의했다.
에드워스 의장은 이날 청문회 내용을 요약해 법사위 전체 회의에 보고해 법제정 가부를 물을 예정이다.
이날 청문회는 일단 외국인의 국가기관에 의한 납치를 비난하는 세계 여론에 대해 그 비판이 온당하다고 인정하는 「미국의 양심」의 일면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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