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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츠린 보수파에 또 타격/이선념 사망과 향후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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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츠린 보수파에 또 타격/이선념 사망과 향후 중국

입력
1992.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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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병서 사령관」 입지전… 등 정책 최대 영향력/등 고령 계산… 보·혁간 시간싸움은 계속될듯【홍콩=유동희특파원】 이선념의 사망은 등소평의 남순강화이후 위축된 상태에 놓여있는 보수파에게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등소평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먼저 이선념의 의견을 구해야 할 정도로 8원로들 사이에서도 이선념의 영향력은 컸던 것으로 알려져왔다.

89년 천안문사태이후 조자양을 면직하고 강택민을 후계자로 정할 때도 등소평 이선념 동의를 가장 먼저 얻고 다음에 진운의 지지를 구했었다는 것.

천안문사태 직후 이선념은 자신이 주석직을 맡고 있는 정치협상회의를 통해 조자양을 맹렬히 비난했다. 특히 조의 실각이 공식화된 이후인 이해 6월28일 그는 『국내 일부 사람들은 서양의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며 중국에서 자본주의를 시행하고 중국을 외국의 속국으로 만들려고 한다. 자산계급 자유화를 추구하는 극소수의 인물들은 이러한 전형이며 조자양동지는 실제로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선념은 진운과 함께 보수파의 울타리역을 맡고 있는 인물로 꼽혔다.

중국 관측통들에 의하면 남순강화이후 등소평의 맹렬한 개혁드라이브에 보수파들이 저항다운 저항을 벌이지 않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는 등소평의 고령을 계산에 넣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만큼 등이 최근 다시 동북지역을 순시하며 건강을 과시하는때 이가 사망한 것은 보수파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가 없다.

원로중에서 등소평의 개혁드라이브를 적극 지지하는 인물은 양상곤 정도일뿐 나머지는 모두 보수적 성향의 인물들이다. 따라서 보수파들은 등소평이 사망하게 되면 어차피 정책방향을 보수기조로 돌려 놓을 수 있다고 판단,등소평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고 있다는 것.

이선념이 사라진 이후에도 보혁간의 대결은 시간과의 싸움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7원로 중에서 누가 먼저 사망하느냐의 여부가 중국의 정치행로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전망이다.

이선념은 1909년 호북성 태생. 목수출신으로 28년 정식 공산당원이 되었으며 주로 노동운동에 종사했다.

홍군에 참여한 후 병졸에서 사령관 위치에 오른 입지전적인 출세가도를 달렸다. 47년 호북 군구사령원을 끝으로 군을 떠난 그는 공산권 수립이후에는 주로 경제분야를 담당했다.

54년 국무원 부총리겸 재정부장에 처음 임명된 이래 80년 조자양 총리 임명때 부총리직을 사임할 때까지 25년간을 부총리직에 있었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도 실각을 모면했다. 82년∼87년까지 정치국 상무위원을 역임했으며 83년에 국가 주석직에 선출됐으며 88년 국가 주석직서 물러난뒤 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을 맡아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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