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9월1일이면 사할린해상에서 통곡과 울부짖음의 소리를 듣는다. 지난 83년 9월1일,소련기의 로켓탄 공격을 받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KAL 007기 희생자들의 원혼들이 지금도 바다 위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이 사할린의 참극을 국민들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사건의 전말은 베일에 싸여있다. 심지어 『KAL기가 첩보활동을 했다』는 「객담」이 책으로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모두가 만행의 주범 소련 당국이 입을 다물어 왔기 때문이다.
『차갑고 깊은 바다속에 채 눈감지 못한 주검의 눈이라도 감겨주고 싶다』는 추도사는 10년 가까운 세월을 격한 지금에도 새삼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 상황에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7일 미 상하양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KAL기 격추 사건의 전모를 추적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뒤늦게나마 비극의 실체를 알 수 있게되리라는 생각에 국민들의 기대가 크게 부풀고 있다.
그렇지만 사건 전모를 공개하겠다는 약속에 접하고도 우리 국민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우리인데,옐친이 미국에서 미국인들을 상대로 그런 약속을 했기때문이다.
물론 2백69명의 희생자중에는 미국인도 끼여 있었다. 또 경제원조가 시급한 옐친이 부시 미 대통령에게 무엇인가 「한건」을 안겨주어야만 되는 정황도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백번을 양보한다해도,소련 공군 전투기의 무차별 공격을 받은 민간 여객기는 엄연히 한국 국적기였고 희생자의 대부분도 한국인이었다. 실리를 따지더라도 우리 정부가 이미 제공한 14억7천만달러나 앞으로 지원키로 돼있는 15억3천만달러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부시 미 대통령이 금년초 「소련 지원을 위한 국제회의」에서 거창하게 발표한 추가지원액은 6억달러였다.
일본의 경우 북방 4개 섬 반환 이전에 원조는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영토 반환의 대가로 일본이 생각하고 있는 대 러시아 원조액은 70억∼80억달러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 외교는 「너무도 후하게 주고 당장 얻는 것은 별로 없는 밑져도 크게 밑지는」 거래로 비친다.
KAL기 사건의 진상규명을 스스로 엄두조차 내지못한채 타국에서 우리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보자니,새삼스럽게 우리 외교의 현주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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