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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퍼스트레이디 「나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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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퍼스트레이디 「나이나」

입력
1992.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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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앞에 나서기 꺼려… 말없는 내조 40년/“가정생활 철저한 남편중심” 라이사와 딴판남편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따라서 처음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나이나 옐친(60)이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바바라 부시를 연상시키는 조용하고 가정적인 분위기로 미국인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얻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아내 라이사가 활달한 행동으로 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반려자 낸시와 「의상 경쟁」을 벌였다면 나이나는 「미국 제일의 할머니」로 통하는 바바라와 「분위기 경쟁」을 벌일만 하다는게 그녀를 지켜본 주변인물들의 평이다.

고르바초프를 제외한 다른 구 소련 지도자들의 「안사람」처럼 본명이 아나스 타샤인 나이나의 과거 역시 최근까지만 해도 두꺼운 장막에 가려 있었다.

소련 최고의 정치지도자들이 너나 없이 아내를 공개하기 꺼리는 이유는 대충 두가지. 첫째는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 정략적인 혼맥형성이 일반화된 상태라 이를 노출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기층민인 노동자,농민계급에서 몸을 일으켜 권력의 정상에 오른 지도자들의 아내란 십중팔구 기본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무지한 아낙네에 불과하기 때문.

그러나 「우랄종합공과대학」을 남편과 함께 졸업한,평범한 가정출신의 나이나가 외부와 담을 쌓았던 이유는 유달리 남의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천성과 여자가 설치는 것을 철저히 못마땅해 하는 남편인 옐친의 사고방식 탓이었다.

소련 정계의 반항아였던 옐친이 어느 정도 「여성상위」를 싫어하는지를 알려면 1987년 모스크바에서 그가 미 ABC방송의 바바라 월터스와 가진 기자회견 내용을 살펴보면 충분하다. 당시 옐친은 대중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고르바초프의 아내 라이사를 듣기 민망할 정도로 맹렬히 공개 비난했다. 91년 쿠데타로 고르바초프가 무력화되고 실권이 그의 수중으로 떨어진후 월터스를 다시 만난 옐친은 『고르비는 모든 일을 부인과 상의해서 결정했다고 들었는데 당신도 그런가』라는 월터스의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 집안에선 내가 보스다. 나는 설치기 좋아하는 여자와는 같이 살 수 없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옐친 부부가 40년을 별 탈없이 지낸는 것을 보면 나이나가 수동적이고 가정적인 여자라는 사실은 분명한 모양이다.

얼마전 「옐친 평전」을 공동으로 펴낸 엘레나 크레피코바와 블라디미르 솔로호프는 『나이나에게 옐친은 그녀의 세번째 아기나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편에게 언제나 가정이라는 완벽한 피신처를 제공했다』고 기록하면서 러시아공화국 퍼스트레이디의 말없는 내조를 높게 평가했다.

집안에서 가족들과 복닥거리며 지내면 「밀폐공포증」이 엄습해 숨이 막힌다는 옐친은 밖으로 나돌며 일과 정치에 파묻혀 지내야하는 업보를 지고 태어난 남자였다. 그의 바로 이런 「운명적인 기질」로 하마터면 둘의 결혼은 성사되지 못할 뻔했다.

우랄 공과대학 2년 시절,활동적인 동급생 옐친과 만났던 나이나는 졸업후 그녀의 고향에서 4백40마일이나 떨어진 오지에 근무지를 배정받은 옐친이 일에 몰두해 아예 소식마저 두절하는 통에 그만 그를 단념해야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후에 옐친은 측근들에게 『졸업후 연애기간동안 아나스타샤와 줄곧 헤어져 있었지만 나는 전혀 그녀로 인해 마음을 졸여 본 적이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나이나는 우랄산맥근처 예카테린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며 지난 85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중앙정계로 발탁된 남편을 따라 모스크바로 주거지를 옮길 때까지 29년간을 고향에서 수로기사로 활동했다. 그녀는 얼마전 네덜란드의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남편은 결혼전과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우리의 가정생활은 보리스 니콜라예비치(옐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가 그의 가정생활을 가능한한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길 원할 뿐이다』 그녀의 발언은 옐친가의 가정생활이 행복하다는 것인지 불행하다는 것인지 도대체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방문 당시 엄청난 쇼핑으로 화제를 모았던 라이사 고르바초프보다 쇼핑대신 빈민구호소에서 바버라와 함께 걸인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었던 나이나가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는 훨씬 존경스런 퍼스트레이디로서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이다.<유에스 에이 투데이="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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