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월5일 상오 서울 명동의 시공관에서는 건국후 처음 시민들이 직접 뽑은 김상돈 서울시장의 취임식이 거행됐다.특유의 트레이드마크인 카이저 수염에 다색의 스탠드 칼라 복장을 한 김 시장은 성경 한 구절 낭독으로 선서를 대산한뒤 취임사에서 『서울시 행정은 복마전과 같다』 『시청공무원들이 모든 시공사비의 65%를 뇌물조로 받아먹고 있다』고 못박고 『앞으로 도둑질 않는 명랑한 시정을 펴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이에 대해 공무원들은 『우리가 도둑이란 말인가』고 반발했고 싱의회는 김 시장을 출석시켜 『우리의 서울시 감사가 엉터리라는 얘기 아니냐』고 따졌으나 카이저 영감은 눈하나 깜짝 않고 『도둑질하는 시정에 관련되지 않은 시의원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되레 호통을 쳐 「사과」를 요구하는 고함 등으로 회의장은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물론 서울시 행정이 복마전처럼 썩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민들은 평소 고자세이던 관료들게에 좌충우돌 식으로 호통을 치는 김 시장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며 새삼 「민선의 위력」에 자부심을 느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의 발자취는 참으로 기구했다. 제헌헌법에 엄연히 실시가 규정됐음에도 6·25동란으로 연기되다가 전시중인 52년 4∼5월에 첫 의회의원 선거를 실시한 것을 스타트로 56년 8월에는 의회의원 선거외에 기초단위 단체장(시·읍·면장) 선거를 치렀으며 60년 12월에는 각급 의원 및 단체장 선거를 실시,완전한 지방자치의 모습을 갖췄었다. 특히 이때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투표지에 직접 이름을 써넣게 하는 가히 선진적인 투표를 실시했던 것. 그러나 5개월만에 박정희소장이 일으킨 5·16쿠데타로 민주주의의 발판인 지자제는 뿌리째 뽑히고 말았다.
요즘 31년만에 지자제를 완전히 소생시키기 위해 지방단체장 선거실시 여부문제로 정국이 표류하고 있다. 앞서 여야가 91년 지방의회의원 선거와 92년말까지 단체장 선거에 합의,지방자치법에 실시시기를 규정했음에도 정부여당이 단체장 선거를 오는 95년에 실시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연기하고 이에 야당이 크게 반발하여 14대 국회의 문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달말 실시는 법상 의무규정인데도 정부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은 법을 어겼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답답한 것은 정부·여당의 연기 이유다. 즉 올해에 대통령 선거 등 4번의 선거를 치르기가 벅차고 선거의 과다 연속집중으로 인한 폐단을 막기위해 기초와 광역의 의원·단체장 선거를 각각 동시에 하되 국회의원 임기 중간에 하겠다는 것. 하지만 금년에 대통령 선거는 예정된 상황이고 선거의 연속 과다도 예견됐던 것인데 90년말 여야협상때는 이를 모르고 법을 통과시켰다는 말인가. 알았다면 그때 야당을 설득,1년을 더 미뤘어야 하지 않는가.
물론 야당이 겉으로는 애써 부인하나 이 문제를 대선과 관련,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즉 최소한 대선과 단체장 선거를 병행하여 야당붐을 크게 일으켜 대선을 유리하게 이끌며 정부·여당체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수 있고 야당은 선거과열 요인을 최대한 억제하여 오로지 대선에만 총력을 기울이려고 하는듯 하다.
아무려나 이 문제가 절충되지 않는 한 경기침체 물가앙등 등 시급한 현안이 산적한 국회는 반년을 넘어 가을까지 휴회가 지속될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뿐이다.
따라서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지자제 실시를 6·29선언의 마지막 숙제라고 했고 또 몇차례나 실시 약속을 연기했던 만큼 국민에게 왜 또다시 연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한다. 그런후에노 대통령은 3당 대표회담을 열어 단체장선거 실시의 새 합의점을 모색해야 한다. 야당도 무한정 국회를 닫을 수 없기 때문에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정부·여당이 책정한 95년 실시는 너무나 늦다. 때문에 「대통령 선거후 1년내」로 법을 고칠 수 있고 또 대통령 선거와 함께 광역과 기초자치단체 2∼3곳의 장을 시범실시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여야 모두 국민은 말이 없지만 진짜 의사표시는 표로 한다는 것을 새삼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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