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판이 열병을 앓고 있다. 그 열도를 짚어보며,의학용어 몇마디를 떠올린다. 먼저는 전구증이요,다음은 후유증이다.사전에 보면,전구증은 전염병의 잠복기나,뇌졸증·전간따위가 일어나기 직전에 나타는 증상이다. 후유증은 병을 앓고난 뒤에도 남아 있는 병적증세를 이른다. 그러니까 본증을 앓기 전에 전구증이 나타나며,앓고 난 뒤에는 후유증이 남는다. 전구증본증후유증이 사슬을 이룬 꼴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전구증본증후유증으로 그치지를 않고,후유증의 고리가 다시 전구증의 고리로 이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후유증이 덧나서 전구증본증을 도지게 하는 경우다. 아마 이런 병이 있다면,그야말로 고질일 것이 틀림없다. 굳이 이름 붙이면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요즘 우리 정치꼴을 보며,섣부른 의학용어를 떠올리는 까닭이 이것이다. 우리 정치판의 열병이 바로 그런 골병의 악순환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이른바 14대 국회의 개원협상이 풀리지 않는 까닭은 누가 보아도 뻔하다. 지자단체장 선거시기가 왜 그토록 심각한 쟁점이 되는지,그 시기에 따른 여·야 득실의 속셈이 어떤 것인지도 모를 사람이 없다. 모두가 올 겨울 대선본증의 전구증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정치 몸살이 후유증의 일면을 지님도 간과할 수는 없다. 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잠시 근거법을 돌아보자.
88년 3월8일 12대 마지막 임시국회는 새로 출범한 6공정부의 지자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방의원 선거는 이듬해 4월30일까지 시행하되,단체장 선거는 추후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이무렵 정계는 13대 공천다툼으로 시끄러웠다. 야권읕 통합에 다시 실패,양김의 주도권 싸움이 증폭되고 있다. 지자제 시행방안을 제대로 논의할 틈이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사태는 이듬해 여소야대 국회에서 반전된다. 지방의원 선거시한을 앞둔 88년 3월9일 거야는,이해 연말까지 시·도의 단체장과 의원을,이듬해(89년) 연말까지 시·군·구 단체장과 의원을 동시 선거한다는 내용의 지자법 개정안은 강행통과 시킨 것이다. 그러나 야당의 지자법 개정안은 대통령의 재의요구에 결려 폐기된다. 그래서 다시 짠 지지제 일정이 「90년 상반기중 지방의원 선거」 「91년 상반기중 단체장 선거」였다. 89년말 5공 청산을 둘러싼 극한대립 끝에 나온 이른바 「대타협」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 「대타협」의 산물도 이듬해(90년) 노 대통령의 중간평가 문제를 둘러싼 여야간 「정치곡예」 틈에 실종되고 만다. 지방의원 선거의 시한을 넘긴 여야는 이해 연말 정기국회에서 지자일정을 1년씩 순연한다. 이에따라 작년에 두차례 지방의원 선거가 있다.
이 뒤의 사태진전은 지금 우리가 익히 보고 있다. 지난 대선본병의 후유증이 꼬리를 끌다가 이제 다음 대선본증의 전구증으로 도진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대선후유증과 대선전구증의 합병증이다. 그래서 증세가 매우 심각하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후유증과 전구증을 함께 고치자면,아무래도 그 각각의 대증요법을 쓸 수 밖에 없다. 그 처방은 자성과 자제가 있을 뿐이다.
앞의 근과거사에서 보듯,지자선거 일정이 이처럼 꼬인데에는 그만 한 곡절이 있었다. 그 책임은 처음부터 합리적인 지자일정을 짜지 못한채 극한대립과 「대타협」,정쟁과 「곡예」를 거듭해 온 당사자 모두에게로 돌아간다. 「한해 4차례 선거」의 의미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철 없음의 책임도 이들 공동의 몫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자성이 문제해결의 바탕이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으로서도그 공동책임을 추궁하고,자성을 촉구해야 한다. 자성이라는 처방의 뜻이 이것이다.
다음 자제의 뜻은,대선과 단체장 선거를 죽기 살기로 연계시기는 한,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데 언유한다. 오히려 한발짝 물러서서,지자제의 합리적인 발전방안과 경제사정,그리고 단체장 선거의 연내 실시여부가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함게 검토하는 자세가 아쉽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단체장 선거를 연기하더라도 내년중에는 실시한다든가,연내 실시가 불가피하다면 이번만큼은 임기 2년쯤의 지방의회 간선으로 한다든가하는 타협점을 모색하되,이것을 여·야간 대선제도 개선작업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어차피 대선과 단체장 선거가 연관되는 것이라면,이 둘을 동시에 협상하여 타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며,그 시발이 자제에 있음은 틀림없다.
이처럼 후유증과 전구증에 대한 처방은 분명하지만,그 약효는 아무도 장담 못한다. 국회의원은 있으나 국회는 없더라는 비아냥마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정치판에,그따위 자성·자세의 처방이 먹힐 것 같지를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정치 열병에는 백약이 무효라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우리에게는 마지막 극약처방이 남아 있다. 바로 국민들 스스로 나서서 중병을 고치는 것이다.
그 방안은 국민투표다. 단체장 선거일정은 대통령 탄핵사유가 될만큼 중요한 사안이므로,그것은 국민투표감이 되고도 남는다.
이렇게 마음을 굳히고 나면 며칠은 더 기다릴 수가 있다. 어제(12일)로써 단체장 선거의 시한이 그냥 넘어간 셈이니,이제는 6월28일,14대 국회의 개원시한(임기 개시일로부터 30일)만이 남았다. 이 시한까지는 기다려 보겠으나,그 뒤에는 국민투표라도 요구해야겠다는 것이다.<상임고문>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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