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의회 특유의 소수파 저항수단/10여미터 걷는데 10분∼45분 소비/문책결의안 한건 처리 13시간8분【동경=이상호특파원】 문책결의안 한건 처리에 무려 13시간8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 처리과정에서 사회당 등 소수파가 보여준 「우보전술」이 화제가 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소가 걷듯이 아주 천천히 행동한다는 이 전술은 일본 특유의 소수파 저항수단이다.
이 전술은 인간이 최대한 얼마나 천천히 행동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5,6일 참의원 회의실에서 사회·공산당 의원들은 온갖 묘안을 다 동원했다.
호명후 의장석 앞에 나와 6계단을 올라가 투표할때까지의 총거리는 약 10여m에 불과하다. 이 거리를 움직이는 동안 가장 대표적인 지연전술은 제자리 걸음후 아주 조금씩 나아가기다. 또 계단을 오를 때는 옆걸음으로 한참을 왔다 갔다 한다.
다 올라가 투표할 때도 몇가지 방법이 있다. 투표지를 찾는다며 온 몸을 천천히 뒤진다. 또 투표직전 일부러 투표지를 떨어뜨린 뒤 다시 집어들고는 소중한 물건인양 손수건으로 깨끗이 닦는다.
마치 슬로모션의 팬터마임같다. 그래서 보통 한사람이 10∼15분 가량 걸린다. 최대 45분정도 소요된 의원도 있었다. 평소의 경우 한건 처리에 10∼20분 정도 걸리는 시간이 이런 식으로 하면 10시간 이상 소요된다.
야당이 우보전술을 사용할 수 있는 배경은 기명투표의 경우 투표속도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데 있다. 다만 『투표자는 끊임없는 투표의사를 표시해야 한다』는 규정만이 있다. 때문에 사회당 의원들은 부자연스럽더라도 계속 몸을 움직여야 했다.
의장의 경우 「일정변경의 권한」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지난 69년 대학운영 임시조치법안 처리시 사용한 전례도 있지만 이번에는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발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전술이 처음 선보인 때는 46년 8월 제90회 제국의회. 당시 중의원의장 불신임안을 제출했던 사회당 등 야당이 자유당의 토론중단 동의에 대한 수단으로 사용해 성공했다. 다음해 신헌법하의 제1회 국회에서 반대로 야당이 된 자유당이 이 수법을 사용하면서 소수파의 저항수단으로 자리잡게 됐다. 「우보전술」이란 용어는 당시 국회를 견학하던 외국인이 『카우 워크』라는 표현을 쓴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분명치는 않다.
이 전술은 50∼60년대 「난투극」에 밀려 사라지는듯 했으나 75년 7월 선거법을 둘러싸고 다시 부활됐다. 88년에는 소비세 국회때 5시간40분이라는 최장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이번에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야당의원 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참의원은 여소야대 상태다.
이 전술에 대한 찬반론은 팽팽하다. 찬성측은 소수파가 취할 수 있는 유일 가능한 합법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또 저항의 자세를 국민에게 그대로 보여줄 수 있으며 문제자체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반대파는 우보전술이 외국에도 예가없는 수치스러운 작태라고 비난한다. 국회는 충분한 토론을 거친후 다수결원칙에 따라야만 하는 장소라는 점을 이들은 강조한다.
우보전술이 일본 특유의 방법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회기불계속」 원칙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회기내에 의결되지 않은 의안은 자연히 폐기된다.
이에비해 구미에서는 의안의 심의가 의원 임기중 계속되기 때문에 「필리버스터」라는 장시간 연설과 수정안의 남발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