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반성없이 “21세기 대국” 안달/북방섬 반환·UN상임국 목표/“신질서 주역” 국제로비 공식화/독일과 큰 대조… “구 적국조항 삭제도 과제” 공언【동경=문창재특파원】 북방영토 반환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입은 일본 외교의 양대 목표이다.
묘하게도 이 두가지는 표리의 관계를 가진 것이지만 국외자들의 눈에는 쉽게 그 모순이 발견되지 않는다. 북방 영토는 2차대전의 결과 소련땅이 된 옛 일본땅이다. 그것을 되찾겠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일본의 전후 처리점수로 보면 좀 후안무치한 구석이 있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려는 노력도 같은 전범국 독일과 비교하면 일본만의 안달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은 별 관심이 없는 일에 일본은 같이 손잡고 가입노력을 하자고 조른다. 전쟁책임은 깨끗이 잊은채 정치대국의 대열에 끼어들려는 안간힘을 미국 영국 등 강대국들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아주지 않는다.
지난해 10월16일 유엔총회에서 일본이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선출된날 외무성은 축제분위기였다. 유효표 1백61표중 1백58표를 얻어 당선 5개국중 톱을 차지한 것이다. 상임이사국 가입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았다.
미야자와(궁택희일) 총리는 지난 1월 뉴욕에서 있었던 안보리 정상회담에서 유엔의 기구개편 필요성을 역설한뒤 슬며시 상임이사국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표했다. 표현은 완곡했지만 기구개편을 강조한 앞의 말과 맞추어 보면 강한 기대의 표명이었다. 물밑에서만 부산하던 상임이사국 외교가 공식화한 것이다.
일본이 캄보디아부흥 동경회의와 아프리카개발 동경회의를 유치하고,러시아지원 분과회의를 주최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상임이사국 외교의 일환이다. 미리미리 표를 벌어두자는 속셈이다. 93년 아프리카 개발회의를 동경에서 열기로 한지 얼마후인 지난해 여름 외무성은 아프리카 11개국의 유엔주재 대사들을 동경에 초청,아카사카(적판)의 고급 요리집에서 가라오케파티를 베풀었다. 또 차관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주일본 대사 10여명에게 자기고향인 홋카이도(북해도) 관광여행을 시켜주었다. 아프리카 개발회의 유치작전의 일환이었지만 더 먼 날을 내다본 공작이었다.
이같은 로비활동의 뒷면에서는 여러가지 가입방식들이 구상되고 있다. 상임이사국이 지구북반구에만 치중돼 있는 현상을 겨냥해 브라질과 일본이 동일티켓으로 가입하는 방안,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대륙에서 한나라씩을 늘리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그것도 안된다면 거부권을 갖지 않는 준상임이사국이라도 좋다는 타협안도 생각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의 일괄가입안은 지난해 실제로 유엔무대에서 제기된 일이 있었다. 일본이 회심의 미소를 띤데 반해 독일은 시큰둥했다. 통일이후 옛 동독지역의 발전이란 국내문제가 화급하기도 했지만 EC통합의 주역을 맡고 있는 나라로서 눈에나는 일을 하고싶지 않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콜 서독 총리는 그때 상임이사국 가입에 아무 관심이 없다면서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독일에 대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었다. 일본의 집착과는 아주 대조적인 태도였다.
집념을 실현시키기 위한 또한가지 현안문제는 유엔헌장에 적혀있는 구 적국조항을 삭제하는 일이다. 이것도 지난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나카야마(중산태랑) 당시 외무장관이 『구시대의 유물인 이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발언한 이후 공식화된 외교현안이다.
이 조항은 2차대전 당시 연합국의 적이었던 일본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핀란드 등 7개국에는 안보리의 승인없이도 강제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삭제되지 않고는 일본은 상임이사국에의 비원을 해결할 수 없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입과 관련한 두가지 외교목표외에 일본에서는 근래에 「21세기 주역론」이 부쩍 성행하고 있다.
91년판 일본 외교청서는 『냉전종결,미·일관계 변화 등의 국제정세 속에서 일본 외교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고 전제한뒤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일본의 책임과 역할이 커졌다고 단언했다. 집권 자민당의 매파지도자 오자와(소택일랑) 전 간사장이 이끄는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역할 특별조사회」는 『세계 신질서는 미·일·유럽 3극 구조로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월 부시 미 대통령 방일에 앞서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시대를 이끌어가는 두 주역임을 선언하는 「태평양헌장」을 채택하자고 제안했던 일도 같은 발상에서였다.
대국이 되는 것은 어느 나라건 민족적 염원이다. 문제는 자격이다. 외무성 차관을 역임한 스노베 료조(필지부양삼) 전 주한 대사는 지난 2월 「외교포럼」이란 외무성 주관잡지에서 국가의 품격과 덕을 강조한 일이 있다. 여자정신대(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전후 보상시비가 한창 시끄럽던 당시 그는 『일본의 전후 처리는 어떻게든 부담을 줄이는데 중점을 두어왔다』고 술회하면서 나라의 품격과 덕을 거론했었다.
일본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가입당시 미국의 볼턴 국무차관보는 『일본은 안보리에 어떤 전략으로 임할 것인가』 물었다.
『그것이… 연일 PKO 문제에 쫓겨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 일본의 답변이었다.
세계인들이 환영할만한 구상과 기본전략도 없는 나라가 우선 정치대국이 되고 보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각국은 불안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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