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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로 끝나서는 안된다/정달영(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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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로 끝나서는 안된다/정달영(화요칼럼)

입력
1992.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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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기는 일들바닥을 치는 일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부시 인기도가 바닥이라는 미국의 대선이야기가 아니다. 바닥에서 바닥으로 게걸음치는 우리 증권시장의 막막한 실상이 그 첫번째 바닥일이다. 열어야 할 국회 문 앞에서 횡보로 어정대는 정치권도 모양이 비슷하다. 북한의 핵문제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좌고우면,침착하지 못한 모습은 또 어떤가. 갈수록 국민의 평균 혈압지수를 올려놓고 있는 「메탄올」 악취도 메스껍다.

그러나 이번 바닥풍경 안에서도 기분 좋은 일이 아주 없지 않다.

그 당당한 하나가 야당 초선의원 12명의 「깨끗한 정치」 선언이다. 또하나 기분 좋은 일이 「메탄올」 사건의 발단을 이룬 시민감시운동이고,그 가능성이다.

초선의원 그룹의 청렴선언은 정치인들의 자기개혁 의지가 처음으로 진실에 근접하는 구체성을 갖고 표출되었다는 점에서 신선한 사건이다. 한 시민단체의 연구와 고발에서 발단이 된 「메탄올」 사건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자구운동만이 후기 산업사회에 접어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결함과 부정적 증후들을 메우고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했다는 점에서 매우 교훈적이다. 그리고 이 두 사건은 서로 멀리 떨어진 무관한 일로 보이면서도 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이어져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 연계의 끈을 가리켜 「민주화의 성숙도」라고 해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잡느냐 먹히느냐

12명의 초선의원은 초선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재야에서 제도정치권으로 편입된 개혁지향적인 인물들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들의 예상을 넘는 선전과 국회진출은 지난 총선에 실린 민심의 뜻을 재평가하게 했던 부분이다.

따라서 그들이 기성정치권 안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하는 것은 이미 주목의 대상이었다. 12명 가운데 한 사람인 이부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그가 「재야에서의 16년을 마감하고 정치의 세계로 뛰어들기로 한 결심」을 밝힌 글에서 이렇게 독백한 일이 있다.

『정치를 바꾸어 놓느냐 아니면 정치에 잡혀 먹히느냐 하는 치열한 싸움판이 바야흐로 다가서고 있다. 다시 나서보는 것이다!』

햄릿을 닮았지만,그보다 훨씬 도전적이다. 잡느냐,잡히느냐의 생사를 건 「치열한 싸움판」에서,그들이 선택한 첫 선전포고가 바로 「깨끗한 정치」 선언으로 나타난 셈이다.

선언의 내용은 요컨대 「돈 적게 쓰는 정치」 「검은 돈 안쓰는 정치」로 요약된다. 화환 안보내기,고급승용차 안타기,주례 삼가하기 등은 그 실천세칙일 뿐이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지독한 불신이 「돈」에 관련된 도덕성 의혹때문이라는 점에서 이 선언은 백번 긍정적이다. 그러나 돈을 적게,또는 안쓰는 정치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어쩔 수 없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행하기는 어렵다는 뜻이고,「수사로 끝나 버리는 정치」에의 우려 또한 씻을 수 없는 것이 경험적 현실이다.

우리 정치권에는 실체적 진실이 없는 허구의 수사가 횡행한다. 「새」 정치,「개혁의」정치,「큰」정치,「화합의」정치가 그것들의 일부다. 「깨끗한」 정치 역시 「그것들중의 하나」가 되지말란 법이 없다. 그러나 다른 어떤 정치보다도 이번의 선언만은 허구의 수사로 끝날 수 없을 것이다. 12명의 개혁세력은 이미 호랑이 등을 탔고,국민의 눈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정치인의 몫이지만 정치인을 만드는 일은 국민의 몫이다. 국민은 먼저 정치인을 바로보는 안목을 길러야 하고,바로 선택한 뒤에는 아끼고 존경하고 키워줄줄 알아야한다.

○정치인 키우는 몫

「깨끗한 정치」 선언에 나선 초선의원들을 격려하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춧돌이 되게하는데는 국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정치적 냉소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냉소주의의 한편에 뜨겁고 진지한 정치적 호기심이 자리잡고 있음도 지나칠 수 없다. 이 호기심은 마땅한 계기만 만나면 뜨겁고 진지하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깨끗한 정치」는 전국민적인 새 바람이 되어야한다. 야당의 일각에서 무명의 초선의원들이 불쑥 저지르고 마는 또 한번의 「수사의 정치」가 아니어야 한다. 여당에서도 새 바람이 불어야하고 정부에서도 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정치에 미래가 있다.

한가지,「깨끗한 정치」에 나선 의원들에게 격려의 편지를 보내는 또 하나의 시민운동은 어떨까. 「깨끗한 정치」를 외면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참여를 촉구하거나 항의하는 편지를 보내면서.<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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