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이래도 되나」 시리즈를 끝내며 행정학자와 말단공무원의 글을 싣는다. 이들은 각자의 글에서 국민의 기관으로 뿌리 내리지 못한 행정의 폐해와 우리나라의 행정풍토를 고발하면서 국민을 봉사대상으로 인식하고 국민의 문제와 고통의 해결을 돕는 행정이 정착될수 있는 여건이 하루 빨리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편집자주> ◎고려대 행정학과 백완기교수/행정,법집행아닌 문제해결 과정/국민의 봉사 기관으로 거듭나야 편집자주>
오늘날 우리행정이 안고있는 가장 큰 문제의 하나가 행정이 국민의 기관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권말기에 공직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공직자의 봉사자세가 흐트러지는 것도 행정이 국민의 기관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데 연유하고 있다. 행정이 국민의 기관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정권말기와 관계없이 항시 그 모습을 지니고 있을텐데 권력기관의 행정이다보니 그 권력종말과 더불어 해이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행정은 새로운 권력을 향해 아부하고 환심을 사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행정이 무서워하는 것은 권력이지 국민이 아니다. 행정은 권력을 무서워하는 만큼 반대로 국민을 깔보고 경멸한다.
공무원들,특히 고위직 공무원들은 고위층의 눈에만 잘 보이면 될뿐 국민의 눈에 잘 보일 필요는 없다. 국민의 눈에 잘못 보였다고해서 하등 신분상 위협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우리행정은 국민보다는 권력자의 편에 서서 일해 왔으며 역대정권들은 행정을 자기들의 권력 유지수단으로 사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행정이 권력의 시녀역할을 할때 국민속에서 국민의 기관으로 뿌리내리기는 어렵다. 이때 행정은 국민에 대해서 봉사의식도 책임의식도 없다. 항시 행정은 국민을 규제의 대상으로 생각할뿐 봉사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정은 국민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요 혐오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존재이다. 국민은 관청문에 들어서면서 겁부터 먹고 필요이상 긴장을 하게 된다.
행정이 국민을 규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국민이 행정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풍토하에서는 국민은 깊고 넓어진다.
특히 공직이 봉사보다는 이권의 확장수단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때 행정은 복잡한 절차,우월성,강제성,권력성,명령성,부처이기주의로 특징지어진다. 우리 행정은 그사이 수차에 걸쳐 절차간 소화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다른 나라에 비해 복잡하다. 예컨대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해 볼때 토지를 매입해서 공장을 세우고 물건을 제조해 해외에 수출할 때까지 우리의 경우는 3년 이상 걸리는데 대만의 경우는 1년여의 기간밖에는 걸리지 않는다.
행정의 봉사로 인식될 때에는 관계부처끼리 자연스럽게 협조가 되지만 이권이나 규제의 수단으로 인식될때에는 관할권문제로 협조보다는 싸움이 잦아지게 된다. 각 기관은 자기의 관할 영역을 넓히기 위해 제국주의성향을 띠게 된다. 고통을 겪는 것은 국민들뿐이다.
행정이 국민속에서 국민의 기관으로 뿌리를 내리려면 행정을 명령시달이나 법의 집행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국민이 안고있는 문제와 고통을 풀어주는 과정으로 행정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이 환자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의 자세를 취할때에 국민의 사랑받는 기관으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고 많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서울시 9급공무원 황치문씨/일부부정·태만 정당화될수 없어/유혹견딜 기본여건 조성도 시급
한국일보에 연재된 공직사회의 고질적 부패와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기강해이에 관한 시리즈 기사를 읽으면서 말단직이지만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소명감없는 일부 공무원들 때문에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공복들마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좌절과 배반감마저 느끼게 된다.
비록 공직생활을 시작한지 1년밖에 안되지만 대민업무의 최일선인 동사무소에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공무원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비난과 의혹의 눈초리에 빈발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먼저 반성해야할 부분이 많았다는 점을 우선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도 할말이 없는게 아니다. 우선 생계조차 위협받는 급료의 문제이다. 9급 4호봉인 나의 월급은 본봉 24만원에 보너스를 합해도 50만원을 채넘지 못한다. 「대학생 과외 한과목에 40만원」이라는 보도를 접할 때면 비참함마저 느끼게 된다. 보수로 직업의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매월 월급봉투를 받을 때마다 『내 일의 가치가 과연 이 정도인가』라는 회의감을 갖게 된다. 박봉의 생활이 비리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유혹에 초연할 수 있는 기본여건은 갖춰져야 할 것이다.
부족한 인원에 부과되는 과도한 업무 또한 문제이다. 우리동의 경우,18명의 직원이 1만9천여명 주민업무를 맡고 있다. 1인당 담당주민이 1천여명을 넘는 셈이다. 동사무소내 기본업무외에 각종 체납액 수금·각종 고지서·징병영장 배부까지 맡아야 하며,동료직원의 출장이나 휴가때에는 두사람 몫을 해내야 한다.
8일에 한번꼴로 숙직을 하는데 숙직 다음날에도 정상근무를 해야한다. 하루 수백여명의 민원인을 상대하고 수백통의 문의전화에 시달려야 하는데도 과연 「친절한 웃음」이 가능할까.
일선 공무원은 또 수시로 「행사 동원병력」 취급을 받곤 한다. 새마을 대청소·자연보호캠페인·반상회 홍보·민방위날 거리 계도 등 기본적인 주·월례 행사외에 수해·제설대비 훈련,불법주차·무허가 건축물·청소년 유해업소 단속 등에 수시로 동원된다.
이같은 수시업무들은 일과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출근전과 퇴근후 또는 심야에 해야하고 다른동에 비해 참여와 단속실적이 부족하면 상부기관으로부터 집단문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일상업무보다 더 피로를 가중시킨다. 또한 보안등 바꾸기와 보기 흉한 담벽의 페인트칠하기는 물론 길가에 버려진 폐기물까지 직접 치워야 하며 선거때면 수십일동안 야근을 밥먹듯한다.
갈수록 심화되는 시민들의 개인·집단이기심과 그로인한 크고 작은 분쟁속에서 공무원의 「중재의 역할」은 점점 작아지기만 한다. 권위체제에 이골이 난 탓인지 주민들은 적법절차에 의한 문제해결보다 「빠르고 쉬운 방법」만 찾으려하고 이는 결국 행정관청의 부조리를 가속시키는 것 같다.
어떤 이유로도 국가질서 유지의 근간인 공직사회의 부정과 태만은 합리화될 수 없다. 그러나 기왕의 잘못에 대한 공무원 자신들의 냉정한 반성과 함께 폐단을 척결하고 공직 본연의 책무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조성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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