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이해 다르고 책임한계 불투명/「안방일」 건넌방서 모른다/서로 “몸사리기”·“힘겨루기”/정책결정 잘못,지연 허다정부부처간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전담부서가 명백한 업무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터에 책임한계가 불투명하거나 여러부처에 관련된 업무가 원활하게 추진되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이겠지만 최근의 행정풍토는 국민들의 개탄과 걱정을 자아내는 정도에 이르렀다. 생색나지 않고 골치아픈 일은 서로 미루고 「밥그릇」이 걸린 문제는 관할권과 기득권을 주장하며 힘겨루기를 한다.
부처간 비협조나 힘겨루기는 특정사안에 대한 이해와 이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여러부처의 협조가 필요한 업무는 대부분 국가운영전반·국민생활에 영향이 큰 중대사안이어서 책임회피·이해다툼으로 인한 정책결정잘못이나 지연의 폐해는 막대하다.
91년초 정부는 해양부 또는 해양산업부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었다. 당시 노재봉국무총리가 10여개부서로 갈라져 있는 해양관련업무를 통합,해양자원의 효율적 개발과 관리를 위해 이같은 안을 냈고 여론의 호응을 받았다.
곧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해양행정개선 실무위원회가 구성돼 지난해 9월까지 실무안을 작성하고 공청회를 거쳐 「늦어도」 지난해 10월말까지는 관계부처 협의를 끝낸뒤 확정한다는 세부일정까지 마련했었다.
그러나 정작 부처간 협의가 시작되자마자 농림수산 동자 건설부 수산청 해운항만청 등 숱한 「사공」들이 저마다 자기부처 위주의 구성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벽에 부딪쳤고 올해부터는 완전히 흐지부지돼 버렸다. 관련부처의 한 관계자는 『다음 정권초기에나 활발히 논의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청과 서울시로 2원화된 수도권전철 1호선의 통합운영문제도 거론된지 1년반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운전사령의 2원화로 효율적인 운행통제가 어렵고 사고가 날 경우 책임소재 문제가 따르며 지하철공사의 잦은 파업·태업등의 문제점 등으로 인해 제기된 통합운영문제도 결국은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부처간 비협조로 업무나 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있는 경우는 종합행정을 하는 서울시의 업무에 특히 심하다.
전철통합운영문제 외에 신도시 전철 사당금정간 과천선은 서울시·토지개발공사·철도청 등이 7천억원의 추가공사비 부담을 서로 미루는 바람에 올연말 완공이 불가능해진 상태이다.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도 국민적인 호응을 얻고 있으나 핵심사업인 남산외인아파트 철거문제에서부터 주택공사와의 의견대립으로 제동이 걸렸다.
서울시는 예상철거보상비 1천8백억원중 올해 6백억원을 예산에 반영할 계획이었으나 시의회가 3백억원으로 깎는 바람에 목동 상업용지의 대토를 제안했는데 주공측은 『서민주택건설자금이 필요하다』며 전액 현금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의대증설(의사증원) 문제에 대한 교육부와 보사부의 입장도 해마다 판이하다. 보사부는 의사수를 더 이상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교육부의 업무인 대학신설인가와 보사부의 업무인 의사면허가 별개임을 내세워 의대증설에 반대하거나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들은 범정부차원의 총괄·통제기능이 미약하기 때문에 불거지는 일들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흩어진 개별 부처가 있을 뿐 행정부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소리 제각각 “종합행정이 없다”/비인기 정책 “우리 소관 아니다”/업무관련 협조요청하기 민망/「입안사업」 표류 일쑤
힘들고 인기없는 일일수록 부처간의 비협조나 불협화음은 더욱 심하다.
정부는 올해를 「교통사고 줄이기」의 원년으로 설정,범정부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표한바 있다.
현재 형식상으로는 국무총리실이 주관,교통부·경찰청 등 12개 부처가 합동으로 참여하는 거창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실제로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경찰청은 경찰 혼자서만 이 일을 전담하다시피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불평한다.
경찰청은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난 4일 영동고속도로의 사고 다발지역에 중앙분리대를 설치하고 차선을 변경할 것 등을 도로 공사에 요청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를 조정해주어야 할 총리실은 사무관급 직원이 다른 일과 겸임하고 있어 업무협조를 요청하기가 민망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주민들의 반발이 큰 김포 쓰레기매립장 문제도 비슷한 경우이다. 계획초기부터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로 구성된 매립장운영조합들이 서로 주민설득을 기피하는 바람에 결국 환경처가 나섰으나 계속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법무부는 올해초 대일 배상청구권문제를 법이론적으로 검토한 끝에 정신대 문제는 국제법상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법적 해결을 요구할수 있다는 의견을 정리,국무총리실 주관하에 내무·법무부 등 관련부처로 구성된 정신대 문제 실무대책반에 보고했으나 대일외교 문제화를 우려한 외무부 등의 소극적인 입장에 밀려 아무런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휘발유값 인상문제만 해도 동자부는 『인상해서 소비를 줄이자』고 주장하고 상공부는 『승용차판매위축』을 이유로,경제기획원은 『물가안정기조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등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연내 인상방침」만 막연하게 공중에 떠있는 상태이며 14대 총선중 국민당이 내세운 「아파트 반값 공급」 「금리인하,물가안정」 등 현실성이 적은 공약에도 해당부처들이 서로 대응을 미루다 결국 국민들에게 혼란만 주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건설부가 최근 말썽많은 신도시의 사업승인업무를 떠넘기려다 이를 거부하는 경기도와 3개월 이상 실랑이를 벌이는 등 「귀찮은 일 피하기」가 여러부처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대전시·충남·충북·전북도 등은 93년 대전엑스포행사의 숙박·관광문제 등의 공동보조와 대청호 수질보호·광역쓰레기 매립장 조성문제 등을 협의키위해 지난해 9월 중부권 행정협의회를 구성키로 했으나 주도권 다툼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광주시민의 숙원사업인 도심철도 시외곽 이전사업도 경제기획원과 철도청의 협의가 안돼 예산을 배정받지 못한데다 지가가 크게 올라버려 이제는 실현가능성이 의심스러워지고 있다.
그러나 보사부와 농림수산부간에 벌어지고 있는 식품가공 인·허가권 다툼처럼 이해가 걸린 현안에는 양보가 없다.
정부 자체에서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지난 22∼23일 대전 유성에서 열린 중앙부처 공보관 세미나를 통해 부처이기주의를 버리고 적극적인 협조와 이견조정 등을 다짐했으나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시급한 경제현안으로 대두된지 오래인 한국 대한 국민 등 3개 투자신탁 회사의 경영정상화 방안도 비인기정책 떠넘기기 분위기로 3년째 표류해오다 27일에야 한은의 특별융자 2조9천억원지원이 결정됨으로써 어렵게 결론이 났다.
이들 회사의 총부채가 6조원,하루 이자만 20억원에 이르러 증시침체를 가중시키고 금융시장안정의 최대 걸림돌이 됐으며 이로인해 기업들이 자금융통을 제대로 못하는 등 경제전반에 끼치는 영향이 심각했는데도 「총대」를 메고 나서는 부처가 없었다.
재무부는 한은의 특융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을 일찌감치 정하고도 여론을 의식해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으며 한은도 법규상 문제등을 들어 부담을 외면해왔고 경제기획원이나 청와대 경제팀도 적극적인 조성을 미루어 왔었다.<특별취재반>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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