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S(독립국가연합)에 대한 경협차관이 멀지않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구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채무의 승계와 상환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해지자 차관 잔여분의 지급을 미루어왔던 것인데 이번에 러시아를 비롯한 CIS 11개국이 상환책임을 보증함으로써 한·러 경협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셈이다.지금까지 러시아는 구 소련의 승계자임을 선언하고,잔여 경협차관분 전액을 러시아에 지급해주기를 바라면서도 전체 채무의 63%에 대해서만 상환책임을 지겠다는 주장을 펴왔다.
특히 최근에 이르러 러시아는 외환사정을 이유로 제2차분 이자의 지불을 하지 못하겠다고 통고해와 우리 정부를 진퇴유곡에 빠뜨렸다.
차관 공여를 중단하자니 기존대출금의 상환이 어려워질 것 같고,차관을 계속 제공하자니 언제 받을지도 모르는 대손규모만 더 크게 늘릴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딱한 사정에 빠졌던 것이다.
이번에 한국이 러시아와 합의한 내용에 의하면 러시아는 구 소련의 실질적 채무승계자로서 구 소련에 제공된 은행차관에 대해 다른 독립국가연합 구성국들과 공동연대책임을 질 뿐 아니라 다른 공화국이 상환책임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러시아가 그 전액상환의 책임을 지고 또 소비재 차관 8억달러에 대해서는 러시아가 전액상환을 보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같은 러시아공화국의 약속이 꼭 이행되도록 우리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할 필요가 있겠으나 문제는 그들의 이행능력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러시아로서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지만 우선 당장 이자갚을 능력마저 없는 CIS국가들이 93년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우리의 차관을 어떻게 상환할 수 있을 것인지 막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CIS 자체의 경제가 정상화되는데에도 앞으로 5∼10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는 터여서 자기 살기에 바빠 빌린돈 상환에까지 정신을 돌릴 여지가 있을 것 같지않으며,가까운 시일내에 갚을 능력이 생길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러시아의 이번 약속은 언제든 갚기는 갚되 저희들에게 갚을 능력이 생길 때 갚겠다는 성질의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워진다. 우리 정부도 아마 이런 면까지 염두에 두고 북방외교의 지속적 추진과 형식상의 체면을 찾는 선에서 차관재개를 결심하게 되지 않았나 믿어진다.
정부는 이번 보증약속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갖가지 자원개발과 현물상환에 의한 상환방법도 강구해야 할 것이며 특히 우선적인 기술이양법도 연구해 볼만하다.
적체되어 있는 현물차관의 처분이 급한 일중의 하나이기는 하나 우리가 빌려주는 돈이 자체 여유자금이 아니라 외국에서 조달해 되빌려주는 돈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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