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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흑갈등을 해소하는 길/곽철 LA변호사(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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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흑갈등을 해소하는 길/곽철 LA변호사(특별기고)

입력
1992.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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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등한 관계서 흑인입장 이해 노력을로스앤젤레스 교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4·29 흑인폭동은 이종 민족이 모여사는 미국에서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준 사건이다.

첫째,크게는 미국에 대해서,그리고 적게는 흑인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모르고 있다.

얼마전 도널드 그레그 주한 미 대사는 LA에서 한·미 양국간의 이해부족을 강조하면서 한국이 미국을 너무나 모르고 있으면서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수십년을 일본과 한국에서 정보계통에 종사하고 외교관으로서 내린 이 결론을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한다.

그레그 대사의 말에 대부분의 한국인은 우리도 어릴때부터 영어를 배웠고 청바지에 햄버거,그리고 미국 영화를 보면서 자랐으며 수많은 유학생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귀국,각계각층에서 지도적 인물로 활약하고 있다며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레그 대사의 결론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곡을 꿰뚫은 진단이라고 생각한다.

단일민족에 의한 단일문화에 젖어 있는 우리는 이종민족이 모여 다원적 문화를 이루고 있는 미국을 종합적으로 파악지 못하고 있다.

특히 흑인에 대해서는 그들의 역사와 문화,백인으로부터 당한 인종차별의 정도,그리고 현재 그들의 미국사회에서의 위치와 문제점들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있다.

이번에 특별히 한인들이 피해를 입게 된데는 두가지 큰 원인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평소에 한인이 흑인들 마음속에 심어놓은 혐오인상이다.

우리는 흑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들의 입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통해 한·흑 갈등해소를 위한 장기적·단기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인종차별을 받으면서도 많은 흑인은 자기를 희생하며 1960년대 민권운동의 열매를 맺었다. 이는 우리교민이 현재 미국에서 누리고 있는 소수민족에 대한 법적지위의 직접적 근거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한인들은 이를 알지도 못하고 감사해 하지도 않는다.

이번 폭동의 도화선이 된 로드니 킹 사건을 흑인에 대한 역사적인 인종차별의 한 케이스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노예제도에서 백인이 자행한 법적·인도적 범죄기록은 실로 전율을 금치 못하게 한다. 무구한 흑인이 백인에게 린치당하거나 살해 또는 강간당해도 백인 범죄자는 무죄로 석방돼 왔다. 뿐만 아니라 단지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흑인 피고인에게는 절도죄 형량에 그 두세배의 형량이 추가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하에서 흑인들이 법에 대해 존경심과 준법정신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미국 각처에서 가장 암적인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흑인빈곤층의 가정문제,알코올 및 마약 중독문제,집단 갱 전쟁 등 악순환이 거듭돼도 아무도 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의반 타의반식으로 흑인지역에 자영업소를 차린 한인이 흑인범죄자들의 가장 손쉬운 목표가 되고 있고,이에 대처할 한인사회는 지도자도 구심력도 없다. 더구나 치명적인 언어장애를 안고 있는 1세대들은 제대로 항의나 하소연도 하지 못한채 그저 참아야 하는 눈물겨운 상황인 것이다.

장기적으로 흑인에 대한 우리의 혐오인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을 알아야 한다. 흑인 가운데 극악한 환경속에서도 뛰어난 인물이 배출돼 인권지도자,정치인,법률가,의사,작가,대법관으로 성공하여 백인을 능가한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 교민들은 직시해야 한다. 존경심과 사랑·동정이 없는 곳에 대등한 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

이번에 정부 대표단이 LA를 현지시찰한후 내놓았다는 대책이 흑인지도자를 한국에 초청하는 것 정도라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이야기한 흑인 빈곤층은 이미 흑인 지도자와 대화가 단절된 집단이다. 또한 흑인지도자들이 현재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물질만능주의만을 보고 간다면 갈등해소는 커녕 한국인이야말로 흑인이 가벼이 상대할 수 있는 소수민족이라는 결론밖에 나올 것이 없다.

단기적 대책은 오히려 교민사회 자체내에서 찾아야 한다. 교민사회의 일대혁신이 일어나기 전에는 이번 같은 화를 면치 못할 뿐아니라 이보다 더 큰 재앙도 스스로 자초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정부는 교민사회의 대변자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교민들도 정부에 의존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이제는 단결해서 미국사회에 오히려 우리 정부를 뒤에서 밀어줄 수 있는 자세와 힘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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