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선 “「피플스 파워」이후 명분상실” 분석/학생측 “누가 되든 친미확실… 새투쟁 준비”【마닐라=최해운특파원】 이번 필리핀 선거에서 하나의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다. 과거 선거때면 으레 정치일선에서 확개치던 학생운동이 실종된 것이다.
이번 선거는 필리핀 선거사상 대통령 상원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모든 선거를 동시에 실시,규모가 가장 크고 후보가 난립해 치열한 접전을 벌였는데도 학생단체들은 이상스러우리만치 침묵을 지켰다.
지난 20여년간 선거때만 되면 특정후보를 반대하는 각종 집회를 갖고 돌을 던지며 가두투쟁을 벌여왔던 필리핀학생동맹(LFS),민족학생연맹(NUSP),대학신문편집자길드(CEGP),기독교학생운동(SCM) 등 학생운동 단체들이 이번에는 어떤 유세장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같은 예상밖의 현상을 분석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일부 언론은 지난 87년 마르코스 독재정권이 「피플스 파워」로 붕괴된후 집권한 아키노 현 대통령이 그동안 「민주화」를 추진해왔기 때문에 과격한 정치투쟁을 벌일 대상과 명분을 잃어버렸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 진정한 정치사회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고 군부의 지속적인 정치개입과 옛 독재정권에 기반을 둔 구 정치인 및 재벌의 기득권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같은 분석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학생세력이 다만 정치변혁기의 와중에서 새로운 운동의 좌표를 설정하기 위한 모색기를 갖고 있을 따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또 한편에서는 이번 선거에 대한 학생운동 세력의 침묵은 각 후보들이 각종 학생단체의 지도자나 회원출신이기 때문이라는 미시적 분석도 있다.
실제로 라몬 미트라 후보가 CEGP의 회장을 역임했고 미리암 산티아고 후보도 대학신문편집장 단체의 회원출신인 것을 비롯,많은 후보가 학생운동 단체 출신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전체유권자 3천1백50만명 가운데 18∼30세의 젊은층이 60%를 점하고 있는데도 학생운동 세력이 특정 정치노선으로 조직화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은 특기할만한 일로 지적되고 있다.
최대 학생단체인 LFS의장 아만테 지메네스군은 『선거는 이 나라의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우리가 모색하고 있는 것은 사회구조의 근본적 개혁』이라고 말한다. 지난 2월 한 급진 학생운동단체가 이번 선거에 개입할 것을 주장하며 「선거혁명」이라는 투쟁목표를 내놓아 학생운동 세력간에 치열한 내부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메네스군은 『이번 선거결과가 어떻든 친미정권이 들어설 것이 틀림없다』면서 『새 정권에 반대하는 새로운 투쟁을 벌이기 위해 시간과 힘을 낭비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학생들의 「침묵」을 설명한다. 이러한 노선이 급진적이라고 반대하는 학생들도 많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에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기간중 학생운동의 「실종」은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잠복기란 분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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