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노 현 대통령의 강력한 지원아래 필리핀 대통령후보 7명중 선두를 달리는 것으로 알려진 피델 라모스 후보의 마지막 유세 현장인 9일 하오 마닐라 루네카공원 퀴리노광장. 10만이 훨씬 넘어보이는 인파가 몰려들고 피켓 스티커 플래카드가 물결을 이룬다.인기가수 탤런트 등 연예인이 연단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함성이 터져 나온다. 하늘에서는 선전삐라를 뿌리는 경비행기와 헬기가 날고 고용한 외국인 패러슈터팀의 축하쇼가 벌어지는 등 요란하다. 유세장 바닥에는 온통 라모스 선전 유인물이 마치 카펫같이 덮여있다.
「돈의 선거」가 피부에 와 닿는다. 너도 나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은 뚜렷한 공약이나 정책제안 없이 헐뜯기와 인신공격,중상모략에 매몰된채 이전투구 하고 있다.
선거막판이 되자 매표폭력 등 타락선거 양상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어떤 후보진영은 기업가로부터 1백만달러의 현금을 선거자금으로 받았다는 주장이 사진과 함께 공개되고 어떤 여권후보는 자신의 선전물을 정부인쇄소에서 제작했다고 해서 말썽이다.
마르코스 독재시절 그의 비호아래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재벌기업가인 코후앙코 후보는 재력과 방대한 기업조직을 이용해 유동표를 훑고 있다.
가톨릭과 신교,회교로 표가 갈리고 남부와 북부로 지역감정마저 유발되고 있다.
군부는 특정세력과 결탁,부정폭력 선거를 자행하고 있고 선관위와 민간 감시기구는 공명선거를 호소한다.
그러나 정작 많은 유권자들은 뜨거운 정치판과는 달리 선뜻 표를 던질만한 후보를 찾지 못한채 갈팡질팡 하거나 무관심하다. 국민들은 구 정치인을 「트래포스」라고 부르며 불신·혐오한다.
그래서 현 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신랄히 비판하며 정치판에 뛰어든 새 인물인 대법원 판사출신 미리암 산티아고 여사에 표가 몰리고 있다. 아키노에 이어 또다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군부의 정치개입,종교 지역감정을 이용한 선거전략,재벌의 정치참여,구 정치인 불신,유권자들의 무관심,매표 타락선거 양상 등은 우리선거와 매우 유사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환경과 정도의 차이뿐일 것이다. 우리 생활수준과 정치의식이 다소 높아졌다고 해서 오늘의 필리핀 선거양상을 비웃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필리핀 선거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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