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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넘친 「멜팅포트」/이행원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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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넘친 「멜팅포트」/이행원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2.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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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을 갖고 있네/그 언젠가는/흑인노예의 피로 얼룩졌던/조지아주의 산언덕 위에/흑인노예의 후손들과/노예의 주인이었던 백인의 후손들이/형제간의 애정을 갖고/정답게 한자리에 앉게될/그날이 오기를­.나는 꿈을 갖고 있네/그 언젠가는/흑인노예를 고집해/흑인들에게 혹심한 고통을 줬던/미시시피주까지도/자유와 정의가 꽃피는/오아시스로 변모하게 될/그 날이 오기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지도자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백인종차별의 서러움을 이렇게 절규했다. 지난 63년 8월23일 워싱턴의 링컨기념관앞 광장에 모인 20만군중에게 그가 사자후했던 「나는 꿈을 갖고 있다」던 그 유명한 연설의 마지막 대목이다.

연설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시래야 할것 같다. 미국의 비참했던 흑인노예사의 촌철살인이다. 자신부터가 흑인노예의 후예로 태어난 킹(1929년생)은 보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목사가 됐다. 그후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흑인인권신장 운동에 앞장섰다.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64년)까지 받았던 킹 목사는 68년 4월4일 레이스얼 레이라는 한 백인이 쏜 총탄에 맞아 39세의 짧은생애를 마감했다.

그후 미국흑인들의 인권과 사회경제적 신분상승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킹의 「꿈」은 악몽이었다는 혹평이 없는것은 아니지만,그래도 지금처럼 신장된 흑인의 인권은 킹의 희생과 투쟁의 성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프리카의 흑인 20명이 1622년 노예상인에 이끌려 미국땅에 상륙한지 3백70년,흑인노예해방이 있은지 1백27년,미국대법원이 흑·백 인종차별 금지선언을 한후 34년이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통령후보경쟁자 제시 잭슨도 나올수 있게 됐으며 토머스판사,파월합참의장,톰브래들리 LA시장과 주지사도 낼만큼 흑인들의 인권과 지위는 향상됐다. 스포츠계와 가요계를 누비는 혜성같은 흑인 슈퍼스타들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들만을 보고 미국의 흑인들이 백인과 평등한 인권과 지위를 향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2억5천만 인구의 12.1%를점하는 절대다수 흑인들은 경제적 배분과 사회적 지위에서 여전히 불평등한 처지에 놓여있고,경찰관 배지를 안전보다는 위협의 상징처럼 느끼고 있다는데서 흑·백관계는 긴장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흑인들에게 더 많이 있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잡다한 인종들의 이질적 요소까지도 가마솥에 펄펄 끊여 융화시킴으로써 무한한 국력의 바탕을 마련한다는 「멜팅 포트」(Melting Pot)­. 그래서 위대해 보이는 미국이 국기를 다지는데 2등공신이라할 흑인들에 관한 한 아킬레스건처럼 느끼고 있다는 것은 미국이 풀어야할 힘겨운 숙제인지도 모른다.

흑인청년 로드니 킹을 덤벼드는 개패듯이 짓이긴 LA경찰관 4명에게 무죄평결을 한 배심원들의 백인우월주의 행태가 LA흑인폭동의 뇌관이 됐다는 것을 세계의 양식인들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멜팅 포트」에서 끓어넘친 불타는 쇳물이 왜 한인들의 상권만을 결딴내야 했는지,그 동인이 분명치않아 우리는 서글프다. 흑인밀집지역과 맞닿았고 그로인해 흑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서 분노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일몰한 이민사와 서툰 정착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라는 것일까. 이 모든 가능성들을 감안한다해도 경찰과 주방위군의 늑장 출동과 결정적일때 수수방관했던 공권력의 속셈을 이해 할수가 없다. LA시와 경찰은 한인지역의 무방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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