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따른 계급화 심각… 포용·탄력성 상실/50년후엔 유색인이 다수/국가결속 새 가치관 시급미 전역으로 확산되는 흑인시위를 계기로 다민족국가 미국의 인종문제에 새삼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 정부가 최근 실시한 인구조사에 따르면 미국에는 현재 1백34종의 인종이 살고 있다. 아직은 유럽계 백인이 2억4천만 미국인구중 75%를 차지해 흑인(12%),히스패닉계(9%),아시아 및 기타인종(4%)을 우선 숫자로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각종 인구조사 기관들은 올해 출생하는 아이가 64세가 되는 2056년께에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중남미 출신의 유색인종이 미국인구의 51.3%를 차지,미국사회의 주류를 이룰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이 이처럼 급속히 유색인종 다수의 사회로 변모할 경우 미국내 인종분규는 흑백 갈등이라는 단순구도에서 보다 복잡한 양상을 띠며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백인대 비백인의 대립만 아니라 각양각색의 피부빛에 따라 갈등관계가 얽히고 설킬 것이란 분석이다.
이번 LA사태에서도 나타났듯이 흑인들은 이미 한인 등 백인보다 만만한 신참 유색인종들에게 증오심을 표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인구수에선 히스패닉계에,부와 사회적 지위에선 아시아계에 밀리고 있는 흑인들의 피해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번 흑인폭동의 진원지인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공립국민학교 취학아동의 31.4%가 히스패닉계이고 아시아계 및 기타 유색인종이 11%를 차지하고 있다.
흑인 어린이의 비율은 8.9%에 불과하다. 또 LA시 흑인거주 지역에선 주인은 한국인,종업원은 히스패닉계,주요 고객은 흑인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유색인종에 대한 흑인들의 적대감은 갈수록 강해질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최근 미국내에 고조되고 있는 보수파 경향은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성취욕 강한 이민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미국은 건국됐고 발전해왔다. 그러나 유럽계 백인위주의 문화를 고수하려는 보수주의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미국사회는 급격히 탄력성과 포용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보적인 사회학자들은 『미국은 이제 「기회의 나라」가 아니라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가 정착된 계급사회로 변질됐다』고까지 주장한다. 특히 미국경제가 좀처럼 불황의 늪을 헤어나지 못함에 따라 빈곤층의 경제적 신분상승 통로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는게 이들 진보적인 사회학자들의 분석이다.
부시 미 행정부와 미국사회의 보수성은 이번 LA 흑인폭동의 한 원인이 됐다는 점에는 대체로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예컨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1일 『부시 대통령은 매우 신중하고 관대하지만 상당히 보수적인 정치인』이라고 전제,『미국사회의 보수성이 이번 폭동을 촉발했다』고 논평했다.
미국 집권층의 보수성은 교육·문화뿐만 아니라 「부의 공평한 재분배」를 위한 공공 정책에서도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등 가난한 소수인종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택문제를 일례로 살펴보면 미 정부는 해마다 4백억달러에 이르는 주택기금을 조성해 주로 백인인 연수입 5만달러 이상 고소득계층의 주택마련에 보조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뉴욕에서만 대개 유색인종인 17만가구의 저소득층이 공공주택을 분양받기 위해 몇년씩이나 기다리고 있는데도 이들에게는 별다른 배려가 없는 실정이다.
주목할 점은 맨손으로 미국에 이민오는 유색인종의 수가 급증하면서 그나마 빈곤층에 대한 혜택은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특히 불안감과 피해의식을 짙게 느끼고 있는 계층이 유색인종 중에선 나름대로 미국사회에서 기득권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흑인들이다. 제시 잭슨 목사 등 흑인 지도자들이 기회있을 때마다 공통의 이익을 위해 소수인종끼리 단결해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소수인종간의 경쟁과 반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다인종국가인 미국이 복잡한 인종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의 결속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의 창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미국사회가 유럽의 전통에 기반을 둔 미국의 기존 주류문화를 민족 종교 문화적 뿌리가 전혀 다른 유색인종들에 계속 강요할 경우 이들은 영원히 미국사회의 주변인으로 남게 될 것이란 견해이다. 이럴경우 한때 미국 국력신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다채로운 인종과 문화는 미국 국력의 소모 원인으로 변질될게 분명하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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