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에 중독되면 외골목을 해매게 된다. 단 하나뿐인 길이니 한사코 달릴 수 밖에 없다. 처음부터 자기모순을 간직한 이데올로기의 종점은 대개 허망과 비극의 벼랑이다. 오늘에 와서 마르크스·레닌주의가 화석이 된것은 이러한 이치와 일치한다. 이념투쟁의 광장에 의미를 잃은 희생이 깔려 있을 뿐이다.우리 사회의 지하에서 꿈틀거린 이념의 망령도 같은 운명에 부딪쳤다. 남긴게 있다면 이데올로기의 종말을 거듭 알려준 것이라고나 할까. 사회주의 혁명을 공개리에 밝히며 계급전쟁론까지 선포한 사노맹의 잔존세력인 총책 백태웅씨 등 핵심 39명이 무더기로 안기부에 붙잡혔다. 이로써 이 조직은 사실상 와해상태에 이르렀다.
사노맹의 실체는 이미 드러나 있었다.「얼굴없는 시인」으로 알려진 박기평(일명 박노해)이 작년 3월에 검거되기 전후 그 목표와 전략 그리고 조직의 윤곽이 확실하게 잡혔다. 지난 89년 11월 전국 노동자 대회에서 뿌려진 출범선언문과 공안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철두철미하게 사회주의 노선을 지향하며 계급혁명을 획책하였다. 우선 현실인식이 극단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철저하게 부정적이다. 「자본가들의 천국이요 노동자와 민중의 지옥에 다름아닌 신식민지 국가 독점자본주의인 남한사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우당관계임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혁명을 기도하는 전략 또한 과격하고 전투적이다. 한때 전대협이 국민여론에 순응,비폭력을 제창하자,이것을 오히려 민중에 대한 테러로 매도한바 있다. 이쯤되면 이데올로기의 광신성을 넘어선 행동의 과격성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들 자신이 내세운 이러한 기치와 사실을 공안기관의 채색이라고 앙탈을 할수는 없을 것이다.
먼저 붙잡힌 박기평은 법정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던 것이 잘못」이라고 털어놓았다. 미몽에서 깨어난 솔직한 고백조차 잔존세력의 귀엔 먹혀들지 않을 것 같다. 이념중독 증세와 편견의 집념은 이토록 지독하다.
이념에 의한 혁명투쟁의 깃발은 마치 패잔군의 그것처럼 갈기갈기 찢겨 땅에 뒹굴고 있다. 그래도 우리만은 해내겠다는 발버둥은 시대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보겠다는 무모함이나 마찬가지다. 민중과 노동자가 공감안하는 혁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저의가 들여다 보인다. 젊은이라면 현실인식과 역사감각이 한층 예리하고 앞서 나가야 한다. 이데올로기와 혁명의 시대는 이제 분명히 막을 내렸다. 진보·혁신세력의 새로운 사고가 요구된다. 번화의 의미를 냉철하게 읽을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데올로기의 투쟁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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