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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셔 외무 돌연사임/독 정국 대변동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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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셔 외무 돌연사임/독 정국 대변동 예고

입력
1992.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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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하락세 콜 총리에 큰 타격/은퇴 배제… 대통령 출마설 부상/연정탈퇴 자민당 독자노선 시각도【베를린=황병태특파원】 세계 최장수 외무장관으로 독일의 「탈냉전외교」 「통일외교」를 주도해온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이 27일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했다.

겐셔 장관은 이날 아침 『외무장관 재직 만18년이 되는 5월17일 사임하겠다』고 밝히고,『외부장관직에 너무 오래 있었다』고 사임이유를 밝혔다.

겐셔 장관은 수년전부터 심장질환으로 은퇴설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도 바이츠제커 대통령의 후임 물망에 오르는 등 독일 정계에서 형식적으로는 2인자,실질적으로는 총리와 대등한 권위와 위상을 과시해와 그의 사임은 전혀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집권 연정의 소수당 파트너 자민당 소속인 겐셔 장관은 69∼74년 내무장관을 거쳐 74년 5월16일부터 부총리겸 외무장관을 맡아왔다. 74년부터 85년까지 자민당 당수를 지낸 겐셔 장관은 69년 브란트정권때부터 지속돼오던 사민당과의 연정을 82년에 깨고 보수기민당과 연정을 구성,슈미트 사민당 정부를 퇴진케 했다. 이후 독일정치의 캐스팅보트를 쥔 독특한 위상을 바탕으로 보수정권내에서 진보적인 균형주 역할을 해왔다.

특히 겐셔 장관은 80년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가 주도한 서방동맹의 대소대결 정책속에서도 독자적인 화해외교를 추구,브란트정권 이래의 동방정책의 기조를 유지한 주역이었다.

겐셔 장관은 구 소련의 고르바초프 등장이후 서방지도자로서는 최초로 고르바초프의 대서방 화해외교의 진의를 인정하고 나섰었다. 이 때문에 서방 보수진영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으나 적극적인 대소화해 정책을 고수,서독의 동서 진영간 독자외교 노선에 「겐셔리즘」이란 정의가 붙도록 했다.

그의 「겐셔리즘」은 독일통일의 기회를 포착,주변국들의 견제를 제치고 전진적 외교로 통일의 외부장애를 넘어선 원동력으로 평가됐다. 그리고 겐셔 장관은 80년대 중반이래 줄곧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받는 최고 인기정치인의 자리를 지켜왔다. 이와함께 국제외교 무대에서도 콜 총리를 능가하는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통일이후 그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었다.

동독지역 할레출신으로 법학을 전공한 겐셔 장관은 52년까지 동독 자민당에 몸 담았으나 이후 서독으로 넘어와 변호사로 서독 자민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59∼74년까지 자민당 사무총장 원내총무 부당수 등을 거쳐 74년 당수직에 올랐었다.

겐셔는 통일후 동독 주민들에게도 인기가 높아 통일 총선에서 자민당이 동독지역에서 약진,연정파트너로서의 힘을 증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같은 동서독지역에 걸친 인기와 정치노선을 바탕으로 국민통합적인 대총령직에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겐셔 장관자신은 그동안 『나는 대통령감이 못된다』고 대통령직에 대한 의욕을 부인해왔다. 그러나 겐셔 장관이 외무장관직 사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직은 그대로 머물러 정계은퇴를 배제한 사실 등으로 미뤄,통일이후 정치적 위상이 크게 높아진 연방대통령으로 다시 부상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일각에서는 그의 사임을 최근 집권기민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잃고 있는 것과 관련,기민당과 결별해 야당 사민당으로 다시 연정파트너를 바꾸려는 포석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그의 사임은 독일정치에 지각변동을 몰고올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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