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만 민주” 문민정치 멀기만…/총선무관 군부서 총리지명권/태국/내달 대선후보 대부분 군출신/필리핀/부수상등 엘리트층 현역장성/싱가포르【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 동남아 정치는 군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동서냉전 이데올로기의 붕괴로 세계 곳곳에서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져 내렸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아직도 군부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태국이 지난 3월 총선을 실시했고 필리핀이 다음달 대통령선거를,인도네시아가 오는 6월 국민의회 선거를 치르게 돼 있으나 군부 엘리트손에서 벗어난 진정한 민주정치는 요원하기만 하다. 동남아시아에서의 군부정치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의 조류와는 달리 근래 수년간 이들 국가가 이룩한 상대적인 높은 경제성장을 버팀목으로 삼아 퇴조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24일 실시된 태국 총선에서는 친군부 5개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민선총리냐임명총리냐는 논란끝에 결국 군부 최고 실권자인 수친다 크라프라 육군 총사령관이 신임 총리자리에 올랐다.
총선이 민의를 측정하는 민주정치의 의식이기는 하나 총선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태국정치는 이미 군부의 손아귀에 장악돼 있다.
지난해 2월 17번째 쿠데타를 일으켜 민선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태국군부,그 실체인 국가평화유지위원회(NPKC)는 민주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말 모든 정치권력을 제도적으로 군부영향력 아래 두는 헌법개정에 성공했다.
신헌법에는 지난 총선에서 반군부정당이 승리했다고 해도 NPKC가 직접 선출의원이 아닌 인물 가운데 마음대로 총리를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군부는 2백70명으로 구성된 상원의원 모두에 대한 지명권을 가지고 있으며 상원의원 70명만 동의해도 하원을 해산시킬 수 있는 등 사실상 모든 권한을 쥐고 있다.
지난 86년 아키노가 이끈 소위 「피플스 파워」로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문민정치시대를 연 필리핀의 경우 다음달 선거를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군부의 정치개입과 입김은 건재하기만 하다.
군부 반란세력은 아키노 대통령집권 5년 동안 6번이나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했다. 아키노가 후계자로 지명한 라모스 대통령 후보자도 군참모총장 출신의 군부 엘리트이고 다른 후보 대부분도 군출신이거나 군부와 끈을 대고 있는 인물이다.
모두 8명의 후보가 난립한 이번 선거에서 어느 후보도 쉽게 과반수표를 획득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후보자간에 선거결과에 대한 시비가 계속될 경우 군부가 개입하게 될 것이란 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지난 수년간 군부의 정치테러로 수백명이 희생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치에 있어서도 군부의 역할과 지위는 너무나 확고하다. 지난 65년 군부내 공산주의 세력의 쿠데타를 분쇄하고 집권한 수하르토 대통령의 장기집권 기반도 역시 군부다. 수하르토는 이번 국민의회 선거에서 군부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군부의 사회 정치적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의회의 5백개 의석가운데 1백석이 군부 몫으로 할당되어 있는 사실은 인도네시아 정치에 있어 군부의 지위를 대변한다.
미얀마의 경우는 지난 88년 민중봉기를 유혈진압하며 정권을 잡은 군부가 90년의 총선패배를 승복하지 않은채 계속 집권해 전세계로부터 무자비한 정권이란 지탄을 받고 있다. 특히 반체제인사인 아웅산 수지여사가 노벨평화상을 받은뒤 구시대적인 군사독재정권은 세계로부터 고립돼 있는 상태에서 어렵게 지탱되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 침략군을 몰아낸 막강한 베트남군부는 본래 집권 공산당에 연결돼 있는 뿌리나 다름없다.
싱가포르조차도 부총리와 정보예술장관 등 엘리트그룹은 현직 준장을 겸하고 있다.
동남아국가의 군부는 대개 서구식 민주주의는 자신들에게 적합치 않은 정치제도라고 주장하며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정치 사회안정을 위해서는 군부가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고 자신들을 옹호하고 있다.
제인 디펜스 위클리지 아시아편집장인 로버트 카르니올씨는 『군부의 정치개입은 아시아정치의 특수성이다.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아닌지는 별개의 문제다』라고 간단히 논평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