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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간통」/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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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간통」/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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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뉴욕타임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요약하면­.『위스콘신주의 한 지방검사가 28세 여인을 간통혐의로 기소했다. 19세기에 제정된 위스콘신주 형법은 간통죄에 최고 징역 2년 또는 벌금 1만달러를 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금세기에 들어 간통죄가 문제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유력한 인권단체인 미국시민 자유연합은 이 사건을 중시,변호사를 파견하고,간통죄가 위헌일뿐 아니라,검찰이 「복수심의 도구」로 타락해 버렸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대하여 담당 검사는 간통의 증거가 확실한 만큼 기소는 불가피하며,그것이 「혼인과 가족의 안정과 이익」에 합치한다고 말했다.

현재 뉴욕 등 미국 각주의 약 절반은 형법에 간통죄를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전문가들은,혼전사통죄나 남색죄와 마찬가지로,간통죄는 이제 사문이나 다름없지만,그런 규정들이 공중의 도덕관념과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에 법전에 남아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기사에서 보듯 간통죄 시비의 구조는 어디에서나 같다. 간통죄 존폐의 논거나,간통죄 위헌 론도 마찬가지­.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미국각주의 간통죄 규정은 이미 사문화가됐으나,우리나라 형법241조의 간통죄(2년이하 징역)는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위스코신 사건은 우리나라의 간통사건 처리와는 좀 다르게 진행될 것이 틀림없다. 짐작컨대,간토의 증거가 확실하다면 배심 평결이 「유죄」일 수도 있겠으나,이에따른 판사의 형량은 아주 가벼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피고측이 상고한다면,간통죄 위헌론은 대법원까지 올라간다. 그렇게 하여,간통죄의 사문화를 확인하는 계기가 생길수도 있다. 간통죄를 없애네,마네 하는 입법논쟁 없이 간통죄는 사라지게 된다.

관습법과 판례법을 뼈대로 하는 영미법에는 언제,왜 그런 규정이 생겼는지도 알 수 없는 희한한 법조항이 많다. 예컨대,미네소타주에는 「남자와 여자의 속옷 빨래를 함께 널지못한다」는 규정,볼티모어시조례에는 「극장에 사자를 데리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규정이 남아있다고 한다. 「국가에 맞추어 춤을 추어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은 여러주법에 들어 있고,일요일 영업금지 규정은 더 흔하다. 이처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사문화한 법을 영어로는 「푸른 법」(Blue Law)이라고 한다. 지켜지지도 않고,적용되지도 않는 법이지만,굳이 폐지하지도 않는다.

56년 영국 형법의 수간죄도,따지고보면 이런 범주에 든다. 이 규정에 의하면 동물을 성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은 무기징역을 살아야 한다. 형이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싶기도 하지만,문제될 것은 없다. 과거 수백년동안 이 죄목으로 사람을 다스린 선례가 없기 때문에,그 규정은 처음부터 사문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를 벗어난 짓을 엄히 금지하는 법규정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영국식이다.

우리나라 법에서도 법의 사문화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중 근래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 형법 269조의 낙태죄(1년이하 징역). 우리나라는 연간 낙탯시술 1백만건 「낙태왕국」으로 알려져 있지만,낙태죄 입건건수는 한해 20∼30건 정도에 불과하다. 검찰은 더 나아가 태아의 아버지가 고소를 한 사건도 기소하지 않은 전례를 남기고 있다. 이런 경향은 정부의 인구억제 정책과,낙태가 공공연하게 두루 행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래서 낙태 합법화론이 나오기도 하지만,지난달 정부가 내놓은 형법개정 시안은 낙태죄를 존치하고 있다. 요즘처럼 출산률이 떨어지다가는,이투의 적정규모 유지를 우해 낙태를 엄격규제할 필요가 멀잖아 생길지도 모른다는 사정을 배려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낙태를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어 나쁠 것은 없다는 영국식 발상도 해봄직은 한 것이다. 이점 우리 사정은,낙태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관련지어,연일 낙태 찬반 데모가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는 논의의 출발점부터 다르다.

어떻게 보면,존폐에 찬반 양론이 있다는 점에서,낙태죄와 간통죄는 비슷한데가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의 형법개정시안은 간통죄만을 폐지했다. 왜 그랬을까.

일반적으로 말하면 성에 관련된 형벌규정은 대개 다음 3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가 있다. 하나는 당사자의 의사에 관한 것(예=강간죄),다음은 사회적인 정서와 관계되는 것(예=공연음란죄),셋째가 성도덕의 유지를 위한 것(예=간통죄) 등이다. 이중 세번째 분야는 국법이 간여할 바 아니며 간여해봐야 아무 실효도 없다는 사실이 민주주의 사회의 공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정부의 간통죄 폐지방침을 일단은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더 근본이 되는 민주주의의 이치를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범죄와 형벌을 시민들이 정의한다는 자명한 사실이다.

시민들은 이 권한을 국회에 위임했고,추상적인 법규정은 검찰과 법원에 해석과 재량의 여지를 남긴다. 이 과정을 통하여 나라의 형사정책과 시민들의 의식변화가 반영된다. 그렇게 하여 우리 형법의 낙태죄는 거의 사문화됐다. 마찬가지로 간통죄도 그렇게 사문화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푸른 간통죄규정」이 법전에 남아있으면,또 어떤가. 결코 입법만능 전문가 만능일 수만은 없다고 한다면,율사들의다수결만으로 간통죄를 없앨수가 없음을 당연한 결론이다.

이같은 이치는,간통·낙태죄만이 아니라,이번 형법개정 시안 전체를 보는 원점이어야 한다.

이번 개정시안은 국가주의·엄벌주의 냄새가 덜 빠졌고,국가보안법 등 정치형법과 특별법의 정비문제,사형제도와 신종범죄 규정의 타당성 문제 등 미흡한점이 여럿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간통죄만이 돌출돼서,오히려 개정시안의 쟁점을 가려버린 꼴이 되고 있다. 형법을 한번 고치면,다시 고치기가 어려움을 생가할 적에,이번 형법 개정시안에 대한 전체적인 논의가 너무 소홀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없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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