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그루지야 “홀로서기” 주역 셰바르드나제(뉴스메이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그루지야 “홀로서기” 주역 셰바르드나제(뉴스메이커)

입력
1992.04.22 00:00
0 0

◎외교명성 업고 정적 잠재운 불사조 정치인/국가평의회 의장맡아 55국 독립승인 활약【워싱턴=정일화특파원】 「불사조 셰바르드나제」 얘기가 미국언론에는 꽤 자주 비치고 있다. 하얀 은발을 아무렇게나 쓸어넘긴채 골수 공산당원답지 않게 미소를 곧잘 띠던 셰바르드나제 전 소련 외무장관은 아직도 서슬이 시퍼렇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정면에서 외무장관직을 팽개치고 한때 민주개혁 운동을 창설,공동의장직을 맡아오다 다시 고르바초프의 간청으로 외무장관에 복귀했었다. 이후 소련이 붕괴되자 그는 할일없는 구 정치인으로 역사속에 파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64)는 지금 고향 그루지야에 돌아와 현재 60명으로 구성된 그루지야 국가평의회 의장이 돼있다.

60명 국가평의회 위원의 면면은 셰바르드나제와 구면이 많은 편이다. 이들은 대부분 옛 소련 공산당 체제아래서 반공산당 운동,그루지야 독립운동을 벌이던 인사들인데 이중 상당수는 셰바르드나제가 그루지야 공산당 제1서기로 재임하고 있을때 감옥에 간 사람들이다.

원수끼리 만난 셈이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도,그에 의해 감옥에 갔다가 지금은 국가평의회 위원이 돼 있는 사람들도 『이제 시대는 변했다. 우리도 변했고 또 변해야 한다』면서 그루지야를 당당한 독립국가로 건설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셰바르드나제도 소련붕괴직후 고향으로부터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반역자로 낙인 찍혔었다. 그의 정적이었고 한때 그에 의해 고초를 겪었던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가 87%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후 셰바르드나제를 「크렘린의 영원한 하수인」 「KGB 첩자」 「러시아 제국주의 옹호자」로 매도하고 그의 그루지야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87%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감사후르디아가 대통령 집권 불과 반년만에 공산독재에 못지않는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구축하게 되자 드디어 내전이 일어났고 내전 2개월만에 감사후르디아 대통령은 러시아의 체체노 지방으로 도망갔다. 셰바르드나제의 귀국이 가능하게 됐던 것이다.

셰바르드나제의 사무실은 그루지야 수도 트빌리시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루스타벨리 프로스펙트가에 위치한 전 마르크스 레닌연구소에 차려져 있다.

젊은이들의 총을 들고,내전때 총탄세례를 받은 이 건물을 셰바르드나제를 위하여 경계를 서고있다.

셰바르드나제는 공산독재와 민족주의 독재를 한꺼번에 경험한 그루지야로 돌아온후 이미 상당한 공적을 세웠다. 감사후르디아 대통령 재임시절 세계의 모든 외교 무대로부터 고립돼 있던 그루지야가 셰바르드나제의 옛 외교경로를 통해 이미 55개국으로부터 독립승인을 받은 것이다.

그루지야는 오는 10월경 국민총선거를 실시한다. 셰바르드나제도 이 선거에 나설 예정이다. 그는 『공산독재와 민족주의 독재를 단숨에 경험한 그루지야인들의 경험을 살려 합리적 민족주의를 위해 헌신할 각오가 돼있다』고 말한다.

셰바르드나제는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주도하는 12개국 국가연합(CIS)에는 아직 가입할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그가 다음 총선에서 그루지야를 책임질 중책을 맡게된다 하더라도 20%이상 떨어진 생산성과 치솟는 인플레,외화유치 등 합리적 민주주의를 이룰 경제적 바탕을 마련키위해 해결해야할 일은 산적해 있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