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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때 미아…「무호적 인생」20여년/“나도 「국민」이 되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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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때 미아…「무호적 인생」20여년/“나도 「국민」이 되고싶어요”

입력
1992.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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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인 없어 「성본창설」 못한채/청소원 등 막일하며 “유령행각”/김현민씨 하소연… 1년전 신고없이 결혼,딸까지호적도 주민등록도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이름만 겨우 알고 있는 20대 남자가 법과 제도밖에서 유령처럼 살아오다가 처음으로 경찰서에 들어왔다.

21일 상오 서울남부 경찰서 형사계 폭력혐의로 붙잡혀온 막노동꾼 김현민씨는 경찰 컴퓨터에 아무런 자료도 입력돼 있지않은 「무적자」로 밝혀져 경찰을 당황하게 했다.

피의자 진술서를 작성하며 28년여동안의 인생유전을 듣던 경찰관도 『요즘 세상에 어떻게 이런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난처하고 딱한 표정이었다.

어렴풋한 기억에 의하면 김씨는 6세때일 무렵 대구 수성구 범어동 범어시장에 어머니와 함께 나왔다가 길을 잃고 미아가 됐다.

시장골목을 헤매던 김씨는 어느 포목점 주인아주머니 손에 끌려 서너달을 잔심부름하며 지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부모가 나타나지 않자 마음씨좋게 보이는 장꾼을 따라나서 3년여동안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그러다가 부모를 찾으려면 대구를 뜨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음식점배달원,철공소 종업원,공사장 잡부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온갖 잡일을 하며 대구에서 살았다.

남들처럼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보는게 소원이었지만 김씨는 스무살이 다돼서야 겨우 한글을 깨우쳤다.

그러나 부모는 찾을 수 없었다. 김씨는 스무살되던 84년 서울에 왔다. 주민등록이 없어 가는 곳마다 채용을 거절당했다.

신림동 난곡의 영세봉제공장에 보조재단사로 겨우 취직한 김씨는 관악구청에 찾아가 딱한 처지를 호소,「성본창설허가」를 내야하는 절차를 알았으나 그의 인생을 증명할 만한 보증인 2명을 구할 수 없었다.

재단기술을 배우며 성실하게 일하던 김씨는 90년 7월 동료 봉제공 신현숙씨(23)를 만나 지난해 3월부터 동거에 들어갔다.

동거 사흘만에 혼인신고를 하자는 부인의 요구에 김씨는 「무적인생」을 고백할 수 밖에 없었고 신씨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한동안 신세를 한탄하며 울며 지냈다.

『어쩔수 없지만 인연으로 생각하고 잘살아보자』고 마음을 돌려잡은 부인의 사랑에 용기를 얻은 김씨는 관악구청에 성본창설허가 신청서를 냈으나 보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또 거절당했다.

지난 1월에 낳은 딸 나리도 아직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부인과 처가식구들의 격려로 그런대로 큰 불편없이 살아온 김씨는 딸이 태어나고부터는 깊은 좌절감에 빠져들었다. 끊었던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21일 새벽 동료들과 술를 마시고 귀가중 홧김에 행인과 시비를 벌여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히는 바람에 경찰에 끌려오게 됐다.

면회온 아내와 딸을 철창너머로 끌어안고 울부짖던 김씨는 『운전면허를 따서 운전이라도 해보고 싶었는데…』라고 말했다. 김씨는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다』고 호소하고 있다.<김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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