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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가장의 선택/생활고 40대 끝내 자살(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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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가장의 선택/생활고 40대 끝내 자살(등대)

입력
1992.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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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당신이나 나나 최선을 다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는 것같아 생을 마감할 결심을 한거요』서울 중랑구 면목동 서울기독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조종식시(42·H운수 버스운전사)는 부인에게 이런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폐결핵으로 만신창이가 된채 힘겹게 살아온 조씨는 지난 20일 상오 6시30분께 연탄불을 피워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다. 유서를 꽂아둔 일기장에는 89년에 아들 혁원군(6)이 자폐증임을 알게 된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려 했던 가장의 노력이 배어 있다.

「지금 당장의 슬픔은 영원한 기쁨의 씨앗이려니… 그래 한번 살아보자」

그러나 4년전 발병한 폐결핵이 낫지않아 한달에 30만원씩 들어가는 약값과 말도 못하는 아들 등 가족 3명의 부양은 갈수록 고통스러웠다.

아들을 고쳐보려고 인근 사회복지관에 다니게 했지만 6개월치 특수교육비 1백만원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돈을 빌려 한달치만 내고 교육을 중단하지 말것을 통사정했으나 적어도 3개월치는 내야 한다는 대답뿐이었다.

19일 밤12시가 다되어 술에 잔뜩 취해 귀가한 조씨는 아들에게 『알아듣지도 못할 고함소리는 듣기도 싫다』고 벌컥 화를 냈다. 부인 임춘봉씨(34)는 딸 혜란양(7)과 아들을 데리고 옆방으로 건너갔다.

조씨가 혼자 남은 안방에서는 고복수의 「타향살이 몇해던가…」라는 힘없는 노래가 계속 들려왔다. 남편을 안쓰러워하다 겨우 잠들었던 임씨는 다음날 남편의 죽음을 알게 됐다.

아버지가 술병나 병원에 갔다고 속이고 아이들을 친척집에 맡긴 임씨는 남편의 일기장을 쥔채 울고 있다. 그 일기장에는 「이 모순 가득한 사회에서 왜 당신들만 웃고 떠들석하게 살아가는가」하는 구절도 있다.<이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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