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들과 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노태우대통령은 『6·29민주화 선언은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치민주화,특히 「경선의 민주화」로 결을 맺을 수 있어야 한다. 계파활동을 분파주의로 매도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봐달라』고 말하고 『관리자로서 엄정중립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민주경선의 당위성 주장은 헌정사상 최초의 집권당 대통령 후보선출에 관한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던 만큼 좌중에 동감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러나 「엄정중립론」에도 동의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도 「한지붕 세가족」이 화학적 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민정·민주·공화계의 대의원 지분이 공정하게 배분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공정한 완전 경선이 현실정치에서 과연 가능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이나 회의가 따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후계구도에 관한한 대통령이 신성불가침의 전권을 행사하는 관행이 굳어져 있는 나라에서 『자! 지금부터 자유경선이다』라고 외치면 대통령의 의중이나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서 권력이양을 위한 당내의 파워게임이 순조롭게 진행돼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척박한 풍토에선 꽃이 결코 제대로 피지 못한다. 「경선의 꽃」이 만발하려면 그를 뒷받침하는 적당한 토양과 물,거름 그리고 햇빛에 해당하는 요소가 갖춰져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공공연한 외압설
민자당 경선에 관한 미심쩍은 우려는 그뒤 기우가 아님이 드러나고 말았다. 친 김파도 반 김파도 예외없이 모두 대통령의 의중(노심)을 읽거나 사실상의 낙점을 얻어내기 위해 안감힘을 다하는 모습들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여권정치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이다. 청와대를 바라보는 성동성서의 엎치락 뒤치락이 매일같이 똑같은 가락으로 반복되자 처음에는 호기심을 느끼던 국민들도 지금까지의 지루했던 대권놀이의 연장선상이 아닌가해서 역겨움과 혐오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쯤 국면의 흐름을 빠르게 한 것이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세칭 교통정리였다.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밀실조정이 끝내 재발한 것이다. 외압설이 공공연하게 퍼진 가운데 「안된다는 사람」이 불출마의 결단을 내려 반발의 변수를 부담으로 안긴했으나 과정이 어떻든지간에 경선구도는 당초의 구상대로 압축된 셈이 되었다.
김영삼이종찬 대결은 결국 노심이 김영삼대표에게 기울었던게 아니냐는 점을 반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어 당초의 중립경선이 사실상 제한경선으로 변질된 것 같은 해석을 낳았다. 엄정중립의 약속이 빛이 바랜 것으로 대국민 신뢰에 금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선택이 가능한 민자당의 경선방식은 세가지였다고 본다. 최선책은 물론 전국 2백37개 지구당에서 각기 대의원을 경선으로 제대로 뽑아 이들을 상대로 한 득표활동을 통해 전당대회에서 후보를 선출하는 완전 경선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이미 시기를 놓치기도 했지만,우리의 정치여건이나 정치력의 수준으로 볼때 아직 때가 이르다. 따라서 중앙에서 지명한 대의원들의 존재를 전제로 대통령이 끝까지 중립을 지키는 방식과 대통령이 지명은 하지 않으나 특정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뒤 무제한 경선을 허용하고 어떠한 결과에도 승복하는 방식이 차선책이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형식상으로는 전자를 택했으나 내용상으로는 전후 두가지 방식을 겸용한 셈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제한경선이지 않았느냐는 비난이나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6·29선언은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김으로써 성공이 가능했다. 위험부담률이 높았지만 결과는 직선 대통령의 자리를 획득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경선민주화가 6·29의 결실이라면 그에 걸맞는 방식을 택했어야 온당했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면 차라리 후자의 방식이 떳떳할 수 있었을 것이고,그것이 위험부담률이 더 높을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무리수가 적다는 점에서 대의명분에 더 가까울 수가 있었을 것이다. 바라는 반향으로 가면 가만있고 그렇지 않을때는 영향력을 어떤 형태로든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예기치 않은 차질이나 부작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흐름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민주화 제전돼야
자율반 타율반이라는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경선체제는 이제 공고일을 계기로 활발하고 진지하게 움직임으로써 새로운 모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발전을 위해서는 몇가지 고언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선 오랫동안의 대권실랑이의 영향탓인지 공고일로부터 경선일까지의 1개월과 그전의 예비기간 등 50여일의 경선기간이 나라형편상 너무 길고 벅차게 느껴진다. 사회가 불안하고 경제가 불황인데 온 나라가 「경선」에만 장기간 매달려 있어도 좋으냐는 국민들의 볼멘소리가 팽배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단순사건이 과민한 여론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또다시 외압설이나 지나친 인신공격,대의원 포섭목적의 금품공세 등 악재가 겹치면 자칫 경선은 말할 것도 없고 대선으로 가는 대국에까지 좋지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김영삼대표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널리 알려진 역전의 정치가지만 장점 못지않게 공격당하기 쉬운 단점을 지녔고,이종찬의원은 전국 무대에서 처음 검증을 거쳐야 하는 입장이어서 의외로 양쪽의 대결이 「대세론」 「세대교체론」을 빌미로 과열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뜨거울수록 그만큼 민심은 멀어져 가게 마련이다. 페어플레이로 열기를 식혀가자.
민자당은 경선을 축제처럼 치러 그 분위기를 대선까지 이어가는 전략인 모양이다. 그러나 민자당 혼자만의 축제는 별 의미가 없다. 국민이 따뜻하게 바라보고 박수라도 쳐 줄 수 있을때 축제는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명심하자.<본사주필>본사주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