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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아파트 생활 속 따뜻한 이웃간 정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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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아파트 생활 속 따뜻한 이웃간 정 확인

입력
1992.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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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소라아파트 주민신문 창간/스스로 취재·편집 고돼도 신바람/시단·문화행사 안내 등 내용 다채/타블로이드판 12면… 공보처에 등록도삭막한 아파트 단지서 이웃간의 벽을 허물기 위한 주민신문이 입주자들 손으로 발간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소라아파트 주민들은 지난 15일 하오 단지내 공원에서 소라소식 창간 기념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주민 5백여명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12면짜리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펼쳐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광고가 대부분인 상업적 지역 신문에 익숙해 있던 주민들은 이 앞파트 6개동 5백61세대만을 독자로 해 자신들이 쓴 기사와 낯익은 이웃의 얼굴 사진이 실린 신문이 공보처에 등록까지 마친 진짜 신문이란 사실에 대견스러운 표정이었다.

지난 80년 준공돼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이 아파트 주민들이 아파트 신문 제작을 구상한 것은 지난해 봄. 19쌍의 50대 부부 친목 모임에서 한 회원이 『날로 각박해지는 아파트 생활에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세태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리는 우리의 신문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데서 시작됐다.

이들은 13명으로 구성된 아파트 주민 대표자 회의(회장 이봉근·57)에 이같은 계획을 밝혔고 대표자회의는 1년동안 부녀회·노인회 등의 전폭적인 지지속에 신문 제작을 추진했다.

모두 생활에 쫓겨 바쁜 처지이지만 대표자회의 홍보이사를 맡은 고인천씨(55·보험업)가 편집을 맡고 주민들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입주자 대표는 「아파트 관리 운영 방향」,부녀회장은 「취임 인사」를 썼고 편집인 고씨는 부인과 대학생 아들 3명을 동원,주차 시설·LNG 공사·개 사육 금지·쓰레기 분리 수거등 주거 환경 실태를 취재,기사를 정리했다.

아파트매세 등 현실적 문제부터 인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문화 공연행사까지 아파트 주변의 모든 뉴스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마감을 넘긴 주부기자와 칼럼을 맡은 라동 601호 아저씨가 편집인에게 닦달을 당하기도 했지만 모두 『우리의 이야기를 취재해 기사를 쓰고 신문이 나온다고 생각하니 신바람이 났다』고 말했다.

당초 예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품도 많이 드는 신문 제작이라 어려움도 많았지만 주변 슈퍼마켓 이발소 제과점 약국 등의 주인들은 앞다퉈 성금을 보내왔고 인쇄업을 하는 주민 2명이 신문 인쇄를 도맡아 주어 신문 제작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욕심이 생긴 편집인은 「임시 기자」로 고용한 아들들을 구청장·국회의원들에게 「특파」해 원고를 얻어왔고 이들은 이뿐 아니라 주민들의 여행기·시까지 받아왔다.

계간지로 등록돼 정기적으로 발간될 「소라소식」을 받아 쥔 주민들은 이날 기념식이 끝난 뒤 즉석에서 주민 노래 자랑을 벌이고 부녀회가 장만한 떡과 음료수를 들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소라소식」이 배달되는 소라아파트는 더 이상 콘크리트벽에 둘러싸인 삭막한 공간이 아닌 따뜻한 이웃간의 정이 감도는 삶의 터전이 되었다.<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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