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영국에서 미여객기 폭탄 테러/리비아인 범인지목에 카다피 “음모”리비아 사태를 초래한 팬암기 폭파사건은 무엇인가. 「주범은 카다피」라는 미·영과 「모략」이라고 맞서는 리비아 가운데 누가 옳은가.
그 전말을 알기위해서는 우선 88년 12월21일 하오7시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마을로 되돌아 가볼 필요가 있다. 당시 목격자들은 갑자기 하늘에 섬광이 비친후 불붙은 비행기 파편이 비오듯 마을로 쏟아져 내렸다고 말했다. 그 비행기가 바로 승객·승무원 2백58명을 태우고 영국 런던을 출발,미국 뉴욕을 향해 가던 미 팬암사 103편 보잉 747점보여객였다.
사망자는 탑승자 전원 그리고 마을주민 등 2백70명. 당시 세계언론은 분노했고 테러단죄를 외쳤다.
미·영은 이후 3년간 3천만달러를 투입한 「사상최대수사」를 통해 팬암기 잔해에서 발견한 「찢어진 바지조각」 「손톱크기의 시한폭탄 장치」로 범인을 추적해냈다. 미국측 주장에 의하면 잔해속의 폭탄장치 가방에 들어있던 바지는 사건 2주전 범인중 1명이 지중해 몰타의 한 상점에서,폭탄 시한장치는 리비아 교통장관은 엘난시리가 85년 스위스에서 사갔다는 것. 그리고 폭탄이 든 가방은 범인들이 몰타에서 프랑크푸르트행 몰타여객기에 뉴욕행 수화물로 탁송,뉴욕행 팬암기에 옮겨 실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리비아측은 이에대해 『미제에 저항하는 카다피를 고립시키려는 소설차원의 음모』라고 일축했다. 리비아는 지난 91년 11월 미·영이 당초 제1혐의자였던 이란·시리아가 무관하다고 발표하고 대신 리바아인 2명을 범인으로 지목한뒤,꼭 4일만에 레바논내 미국인·영국인 인질이 석방됐던 사실을 제시한다. 즉 정략적 차원에서 이란 등이 면죄부를 받고 대신 리비아가 덤터기를 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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