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선생 암살의 배경과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할 계기가 손에 잡혔다. 더 이상 어물거리며 덮어 두거나 늦출 수가 없다.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수치스런 역사의 죄인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암살범 안두희가 43년만에 처음 배후에 대해 입을 열자,여러가지 증언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암살범 자신도 TV와 공개회견을 통해 배후 관련자의 이름을 확산시키고 있다.그 뿐만 아니다. 백범의 아드님인 김신씨는 암살범의 진술이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한다. 백범 관련단체와 학계나 일반의 의견도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으며 야당에서도 범국민적 조사가 시급하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쯤되면 민족의 과제로 급부상했다고 해서 과장이 아닐 것이다.
암살범 안두희의 몇차례 증언과 진술은 단편적이며 일관성을 잃었다. 아직도 뭔가 횡설수설하듯 숨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김창룡을 비롯,장택상 노덕술 최운하 김태선 등의 이름을 떠올리지만 계속 「암시와 분위기」만 끌어댈 뿐 구체 사항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 당시의 상황을 알만한 생존자들도 극소수이며 그들의 증언 역시 음모의 핵심을 속시원하게 밝히기엔 미흡할 뿐이다. 오랜동안 품어온 심증과는 합치하나 딱 부러질 실증이 아쉽기만 하다.
암살 직후의 정황으로 미뤄 음모세력은 권력의 비호를 받았음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일방적인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었을 까닭이 없으며 결말은 암살범의 안락한 생활을 보장하기에 이르렀다.
지나간 후회이긴 하나 진상 규명의 호기가 있었다면 4·19 직후였다. 자유당정권의 붕괴로 정치와 권력의 장애가 일시에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그 기회를 사회혼란에 묻어 버렸음은 두고 두고 한탄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기회는 다시 왔다. 국민의 관심이 고조되고 아직은 그나마 증언가능한 생존자들이 살아있다. 무엇보다 암살범이 올바른 정신으로 자백할 수 있을만 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남은 과제는 증언과 기록의 확실한 검증과정이다. 아무리 거대한 빙산도 일각이 녹아내리면 그 허상이 무너져 내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역사의 순리를 믿는다.
우리가 세운 대한민국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잇고 있다. 임정수반을 우리 손으로 시해하였음이 국가의 정통성과 도덕성에 심대한 상처를 입혔다. 특히 친일세력을 단호하게 다스리지 못하고 거꾸로 그들로 하여금 권력을 농단케한 과오는 언제라도 척결해야 할 민족의 숙제였다.
거듭 밝혀둔다. 진상과 배후를 이번에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우선 정부가 「일시의 화제」로 방관하거나 제3자의 입장에 서면 안된다. 공개할 자료는 서슴없이 공개해야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국회에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학계의 참여를 적극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제와서 역사의 진실규명에 여야나 민과 관이 따로 있을 수는 없다. 백범암살의 규명이 범국민적으로 진행되면 대한민국의 법통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것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치욕과 후회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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