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담이 잦다. 어디를 가나 대선이요,경선이요 하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바른 화제는 별로 없다. 총선을 연이은 대선정국이 불투명한 탓이다. 다음은 그중,친구 몇이 모인 어떤 술자리 정담의 녹음이다.『자네 「오리공화국」 아나?』
『뭔데』
『시인 김종문이 이렇게 읊었거든.… 우마차가 지나가고 오는 나무다리밑…/…두터운 주둥이마다/터져 나오는 바스와 알토는/허라 오리공화국/행렬은/주석을 돌고 돌았다/어느 놈이/선두/후미/알바 아닌 원무곡…』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가 「오리공화국」 같다는 거지. 바스와 알토,목소리가 제각각인 데다가,선두도 후미도 없는… 우리나라 정치판,어느 당의 대권후보 경쟁은 영락없는 「오리공화국」이야』
『하지만,왜 하필 오린가』
『생각해 보게. 지금 우리 정치판 연못에 오리가 잔뜩 떠 있어. 대통령이라는 이름의 엄지오리,무슨 최고위원이라는 중치오리에 새끼오리. 미운 오리새끼에,고운 오리새끼. 우리는 나무다리 위 우마차에서 이들을 굽어 보고 있는 셈인데,아무리 보아도 물위의 오리 몸퉁은 보이지만,물밑 오리발은 못봐. 오리들의 이합집산을 보아서는,물밑에서 물갈퀴를 바삐 놀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나,그것이 우리 눈엔 안보여. 특히 원무곡 선두의 엄지오리 발이 말이야』
『그래서 답답하다?』
『오리무중…』
『아니 오리무중,안개속 오리겠지』
『하긴 요즘 신문을 보면 안개지수가 너무 높아. 대통령의 「의중」,대통령의 「심중」,이런 말이 너무 흔하거든. 대통령을 만난 사람은 이편 저편 다 웃으며 나오고 그가 한마디 하면,이편 저편이 다 우리편을 두둔했다 이러고…』
『책토로 알려진 어떤 최고위원이,한동안을 삐쳐 누웠다가 그를 만나고나서 뭐라고 했어? 그분은 원래 생각이 깊은 분이라(의중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한국일보 4·10조간 3면)고 했잖아』
『그야 약과지. 그의 친인척 3총사의 행적을 봐. 한 사람은 대권후보로 나설듯이 설치고,한 사람은 계파후보를 단일화한다고 바쁘고,또 한 사람은 또 다른 계파로 기운듯이 행세하고…. 그래서 친인척 역시 그의 「의중」을 못 읽었다고 한다면 권밖의 남이야 무슨 말을 하겠나』
『하지만 대권후보를 경선하자면,섣불리 「의중」을 내보일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대통령이 부동표·기권표일 까닭이 없지 않나. 그 역시 경선에 한 표를 던질터인데,그 표의 향방을 보아 투표를 하겠다는 대통령 직계 관망세가 크니까,결국은 그의 「의중」대로 후보가 결정될 수 밖에 없지. 정치수학이 이렇게 뻔하다면,대통령이 어떻게 권투 심판 행세만을 하나. 권투심판은 경기가 끝난 뒤 이긴 선수의 손을 번쩍 들어주면 된다. 그러나 그 승패가 처음부터 그 심판 손에 달린 게임이었다면,이편이든 저편이든,진 선수가 납득을 하겠나. 분란이 나지… 탈당이든,분당이든』
『그래도 경선은 공약인걸』
『맞아. 하지만 그건 모양이야. 왜 그런 모양을 갖추나? 흔한 말로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지. 그러니 까놓고 말해 보라구. 경선이 목표냐,대선이 목표냐?』
『그러니,야당할 각오를 해야지』
『그럴 수 있을까. 하기야 당에 분란이 나면,싫어도 야당을 해야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해서 거야가 된다?』
『그보다는 원내 30석,의석점유 비율 10%의 집권당 모양은 어떨까. 의석 1백석의 집권당도 여소야거이기는 마찬가지겠지만…』
『그야,다시 「헤쳐모여」,이렇게 되겠지. 정치판 연못에는 바람따라,물결따라 흘러다니는 오리들이 많으니까. 관훈클럽에 나온 재벌출신 당수의 말이,「올바른 소리를 하면 적은 수라도 공감을 일으킨다」고도 했고…』
『글쎄,난 그 「헤쳐모여」가 걱정이야. 일전 어떤 사람을 만났더니,제법 정치를 해본 사람인데,이런 말을 하더라구. 14대가 문제야.짝수 국회가 문제야라고 말이지. 그의 말인 즉,우리 헌정사상 짝수국회는 늘 온전치를 못했다는 거야. 그래서 챙겨봤더니,2대 국회는 부산 직선개헌 파동을 겪었고,4대 국회는 4·19로 2년2개월만에 도중하차,6대 국회는 처음부터 임기 3년6개월의 절름발이,8대 국회는 10월 유신으로 1년4개월만에 강제 해산,10대 국회는 10·26으로 1년7개월만에 침몰,12대 국회는 6·29뒤 직선개헌으로 임기 1년을 단축,홀수국회는 5·16때의 5대 국회를 빼고는 그래도 임기를 다 채웠더군. 그렇다면 이제 14대 짝수국회가 곧 열리는데…』
『에끼,그 무슨 악담인가』
『악담이 아니라,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야. 앞이 안 보이고,하도 답답하니까,별의별 생각이 다들더라구』
『하긴,지금 우리나라가 이러고 있을땐가 싶어. 총선 후유증의 마무리가 제대로 됐나,경세시책 하나 가다듬을 틈이 있었나. 이런 판에 정부는 겨우 1개 재벌을 상대로 치고 받고,여당은 여당끼리 대선이다 경선이다 서로 헐뜯고…. 그러는 사이에도 바깥세상은 얼마나 숨 가쁜가. 북은 또 어떻구. 저네들 핵이 코앞에 달랑거려도 못본척하는 꼴인데다가,남북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저네들이 딴 말을 해도 할 말이 없으니…』
『그러니 오리공화국』
『엄지오리는 레임 덕(Lame Duck=절름발이 오리)에 시팅 덕(Sitting Duck=앉은뱅이 오리). 새끼오리들은 마냥 바스와 알토』
『너무 비아냥 거리는 말아,남의 일이 아니니. 하지만,좌우간 무슨 가닥을 잡아야지 이대론 안되겠어』
『글쎄 그 가닥잡기가 한 사람에게 달렸다는 말(3·28본란)을 내가 했지? 임기말 집권자라면 정권교대가 매끈하게,그것도 후계정권을 만들어 인계할 수 있으면 더 좋고,그보다도 퇴임후 헌정에 대한 걱정이 필요없게,온갖 포석을 다 해야 하는 것인데…. 이러다가는 그 한사람마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궁지에 빠지는 것 아닐까
『딱해』
『딱하다 못해,이젠 정담이 지겨워』<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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