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중간평가3당합당 이후 거여 민자당의 출현과 그에 따른 한국정계구도의 앞날에 대해 국내외의 각계에서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어왔다. 그러한 관심의 한 형태가 일본의 이른바 「55년 체제」와의 비교시각에서 민자당의 앞날을 점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3당통합으로 인한 민자당의 등장과 그에 따른 거여소야 판세하의 한국정국은 일본에서 자민당 장기집권의 기점이 된 1955년의 정계개편,곧 보수와 혁신이 각기 자민당과 사회당으로 통합된 양대체제 아래서 자민당의 실질적 1당 지배체제를 방불케 하는 판세였기 때문이다.
관심의 초점은 민자당이 과연 일본의 「55년체제」 이후의 자민당처럼 안정된 장기집권으로 연결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관심은 민자당의 경우,합당후의 공식적 선언에도불구하고 당내에 엄존하고 있는 다양한 계파가 과연 일본 자민당의 파벌들처럼 어디까지나 같은 당내에서 갈등속의 생산적 기능을 통해 당내 민주화와 장기집권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냐,아니면 갈등과 대립만의 비생산적 기능으로 일관하거나 더 나아가 부당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이제 민자당 출범후 2년만에 치른 「3.24총선」의 결과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대권경선을 둘러싼 계파싸움의 양상을 놓고,위의 두가지 문제에 대한 중간대답이 가능해진 것 같다.
우선 「3.24총선」 결과로 보아 민자당이 꿈꾸던 일본의 자민당식 1당 지배체제는 무산되었다는 점이다. 아직도 대통령선거가 남아있으니 민자당의 재집권 가능성이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국회를 중심으로 하는 정국구도에서는 거여의 독주로 장기집권이 보장되는 일본식 「1.5 정당제」의 가능성은 좌절되었음이 분명하다.
「3.24총선」 결과 나타난 민자당의 참패와 국민당 및 무소속의약진은 일본 「55년체제」 이후의 첫 총선에서의 민자당 압승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일본의 경우 「55년체제」후의 첫 총선에서 자민당이 전체의석의 64%,사회당이 33%를 차지하고,이러한 분포가 1960년대 후반까지 지속됨으로써 양대정당제,보다 정확하게는 「1과 2분의 1」 정당제의 정착방향에서 정국의 안정화가 추진되어 나갔던 것이다.
○무엇이 다른가
민자당의 「좌절」과 자민당 성공의 차이는 어디에서 왔는가? 가장 중요한 몇가지만 지적해 두기로 하자.
첫째는 합당의 배경과 추진동인이 다르다는 점이다. 민자당의 합당은 일본 자민당의 경우와는 달리,이념과 정책상의 동조보다는 정치적 이해타산만이 앞서고 사회세력의 요구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추진된 정치지도자들과 이에 추종하는 의원들간의 연합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보수세력의 결집이었다는 민자당이 「3.24총선」에서 이유야 어디있건 보수재벌당의 등장으로 타격을 입고 중산계층의 이탈자가 많았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둘째는 일본 자민당은 출범후 개혁과 고도성장을 달성함으로써 농민·자영업자·중소기업가 등 사회적 약자의 대다수를 지지기반으로 흡수할 수 있었는데 반해 민자당은 그같은 사회·경제적 성과가 미흡하고 오히려 역기능을 하였다는 점이다.
셋째는 앞서 제기한 두번째 관심,곧 파벌기능의 비교와 관련되는 문제다. 일본 자민당내의 파벌은 역기능이 있는 반면에 정책의 다양성과 유연성의 근원이 되기도 하고 후원회의 역할 등과 더불어 사회세력의 결집과 연결됨으로써 자민당 우위를 유지하는데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의 파벌에서는 아직은 그같은 순기능을 찾아내기 어렵고 치졸한 권력투쟁양상만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전망은 밝은가
「3.24총선」에서의 민자당의 참패는 이러한 민자당의 체질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자당은 총선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과 다름없는 대권후보경선을 둘러싼 계파싸움에 돌입하였다.
하기야 집권당의 대권후보가 지명에 의하기 보다는 민주적 경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기에,지금 국민들은 그나마 대권후보 경쟁이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치러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후보경쟁이 과연 얼마나 총선에서 심판받은 독선적 계파싸움의 양상에서 벗어나 국가적 지도자로서의 비전과 자질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인지 자못 의심스러울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직도 「제한적 경선」이니 「완전경선」이니 하여 경선 그 자체가 성사될지 조차 의심스럽게 만들고,여차하면 「탈당」과 「역분당」카드가 은밀히 내비쳐지는 상황이고 보니 국민은 앞이 보이기는 커녕 걱정만 태산같다.
좀 성급한 예측일지 모르나 14대 총선결과에 나타난 민심의 소재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민자당의 계파싸움 양상이 건전한 파벌정치로 승화되지 않는한 그것은 다가오는 대선에서도 민자당의 대권행로가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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