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연구실 불 더 밝혀라”/수년동안 연구논문 한편 안쓰고도 “안주”/“실적 올리기” 표절까지… 권위먹칠 소동도/학교측선 연구비 중단등 평가제도 엄격히 개선해야□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유승우·김철훈·남대희·이성철·이태희기자(사회부)
김진현 과학기술처장관은 최근 이례적으로 전국의 정부출연연구소와 기업부설연구소에 근무하는 과학기술인들에게 「연구실을 지키는 연구원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냈다.
김 장관은 이 서한에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들 나라의 도전을 방어·극복할 수 있는 「질의 힘」을 길러야하며,이를 위해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인식과 사고를 대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또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과거 이데올로기 동맹,군사동맹에 관용스럽던 기술환경이 반전됨에 따라 경제력 제1주의,기술패권주의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정치의 우방」은 있어도 「기술의 우방」은 없다고 연구원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조규향 교육부차관은 이 서한을 복사,교육부 실·국장들에게 숙지토록했다.
김 장관의 호소는 대학의 울타리안에서 안주해온 교수들도 귀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대학생들 사이에는 「3T 교수」라는 말이 유행한지 오래다. 출근해서 차(Tea) 한잔으로 오전을 보내고 한두시간 강의한 뒤에는 동료들과 어울려 테니스(Tennis)에 열중하는가 하면 집에 돌아가서는 텔레비전(TV)을 보면서 소일하느라 연구와 담을 쌓고 있는 일부 교수들을 빗댄 말이다.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교수가 학생들의 눈에 이렇게까지 비쳐졌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외부 활동치중 눈살
수년동안 논문 한편 내지 않는 교수,연구 보다는 외부활동을 통한 매명으로 쉽게 사다리를 오르려는 교수,연구비를 받고도 실적을 내지 못해 교육부 또는 학교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는 교수,심지어는 남의 논문을 표절하는 교수까지 학자로서의 도리를 망각한 실례는 많다.
우리나라 상위권 대학의 교수연구실적 실태를 보면 나머지 대학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연세대가 지난해 신설한 대학연구처의 비공식집계에 의하면 지난 90년 전체교수 9백50명중 2백여명이 1년동안 단 1편의 논문도 쓰지 않았다.
이 대학 원주캠퍼스와 의대 치대 간호대를 제외한 전체교수 4백여명중 1백40여명이 「연구논문 제로」를 기록했다.
모대학 화학과의 교수 27명중 최근 5년간 외국잡지에 논문을 게재한 사람은 9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교수들은 국내 학술지에 주로 얼굴을 내밀고 있으나 그나마 2년에 한번도 기고하지 않은 교수도 있다.
모대학 토목공학과의 경우는 국내학술지에라도 논문을 내는 교수가 11명중 3명에 불과하다. L교수는 저서는 물론 8년째 페이퍼정도의 간단한 소논문조차 내지 않고 있다.
건국대 교무처장 김현룡교수는 『우리대학의 연구풍토는 교수가 되기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다 임용이 되면 안일한 타성에 젖는 대입수험생과 같은 악순환을 겪고 있는게 사실』이라며 『장래가 촉망되던 젊은 교수들도 자리가 잡히면 연구성과가 도리어 떨어져 연구와 안정도가 반비례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학칙이 요구하는 4∼5편의 논문을 써내는데도 부실 또는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S대 박사과정 문모씨는 『유학시절 과제물로 제출했던 소논문을 그대로 번역해 국내학계에 연구논문으로 발표하며 수년동안 우려먹는 교수들도 많다』며 『이러한 편법이 통용되는 한 학문 발전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H대 경제학과 Y교수는 보직교수시절 대학생들에게 수업중 강의계획과 관계없는 외국 논문을 요약번역케한 뒤 이를 정리해 자신의 연구 논문으로 발표,물의를 빚기도 했다.
제자들의 논문에 편승하는 식으로 공동연구논문을 발표하거나 30쪽 안팎의 학부졸업생 수준의 글을 연구논문실적에 계상해 달라고 우기는 교수들도 일부 있다.
지난 1월 서울 D대에서는 S교수가 90년 논문집에 일본 동경대 교수의 논문 일부를 도용한 것이 밝혀져 학과장이 보직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학원생들은 원문과 표절논문을 대조,S교수가 오역한 부분까지 지적해내 교수의 권위를 극도로 실추시켰다.
90년 10월 K대 Y교수가 승진에 필요한 규정논문수를 채우기 위해 다른 대학 부설연구소가 발행하는 학술지에 자신의 논문이 게재된 것처럼 꾸미기 위해 같은 이름의 가짜 학술지를 만들어 검찰에 불구속기소된 일은 교수사회의 치부중 하나다.
연구실적과 교수의 지위는 우리나라의 경우 함수관계가 없다. 이같은 풍토는 많은 교수들을 학자본연의 창의적 연구활동 보다는 외부강연·교제활동·대중매체에의 기고 등 보다 쉬운 매명활동으로 내몰고 있다.
일반에게는 「지성인의 간판」으로 알려져 있는 교수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발표한 학술논문을 찾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다.
사립 M대의 교무관계자는 『연구업적이 아예없어 승진을 못하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수준미달로 탈락한 경우는 지난 20여년동안 한번도 없었다』며 『그나마 승진연도나 재임용 연도가 임박해서야 몇년치의 논문을 몰아 벼락치기로 제출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87년부터 서울대·연세대·홍익대 등이 연구처를 신설한 뒤 각 대학에서는 교수들의 연구의욕을 고취하고 연구지원·심사를 총괄하기 위한 전담기구를 잇따라 만들 예정이다.
그러나 평가받는데 익숙하지 못한 교수들의 부적응·반발로 가시적 효과가 나타날지의 여부는 아직 미지수인 상태.
연세대의 경우 연구처와 외부 프로젝트를 포함한 연구비의 수입·지출을 중앙관리하는 방안을 이달부터 시행할 계획이었으나 기득권 침해라고 주장하는 일부 교수들의 반발로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연세대의 방안은 연구비를 대상자 선정때 60%,중간보고서 평가후 40%씩 나눠 지급하고 증빙서류·영수증 등을 제출받는 등 연구과정을 철저하게 검증한다는 것이다.
국민대는 지난해부터 연구비를 받은 뒤 일정기간까지 연구실적물을 제출치 않는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도로 물어내게하는 「환수제」를 만들어 실시하고 있다. 이 대학 변동건 교무처장은 그러나 『이같은 연구실적심사의 강화방안은 과감히 실행에 옮기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난점이 산적해 있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최근 교수연구업적심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던 홍익대에는 교내·외 교수들로부터 『그럴 수가 있느냐』 『왜 먼저 제살깎아먹는 일을 하느냐』는 등의 항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보수·승진 제한을
이같은 대학의 연구능력의 질 저하는 기업의 대학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기업들은 기술개발연구를 대학에 의뢰하고 싶어도 마땅한 대학연구소가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정부 출연연구소도 관련분야의 적절한 전문교수를 찾지 못해 위탁연구에 차질을 빚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기술 협동조합의 자료에 의하면 대기업들은 대학으로부터 연구인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으로 ▲연구인력 수준 이하(31.1%) ▲연구인력 정보부족(28.9%) ▲인센티브 부족(26.8%) 등을 꼽고 있다.
결국 교수들의 연구의지와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연구실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통일된 제도가 마련되고 교수들이 이에 승복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미국의 경우처럼 학술지를 권위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게재된 논문도 계량적인 점수로 종합,이에 따라 보수나 승진에 차등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권숙일교수는 『교수연구업적의 질적수준을 단순히 발표편수로만 평가할 수는 없지만 교수사회에 연구풍토를 쇄신하려는 바람이 불지 않는 한 대학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수 1인당 논문 평균 연 0.9편/소속교원 1편 미만 대학 전체의 48%… 학술지 원고없어 못내기도/대교협 4년제 대학 조사
전국 대학 총·학장의 협의기구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 90년 12월 실시한 4년제 대학교수(예·체능계 포함)의 1인당 연구실적 조사결과를 보면 「연구안하는 교수사회」의 실상을 금세 알 수 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1년에 발표하는 연구논문편수가 교수 1인당 평균 0.9편으로 1편이 채 못되고 신학대와 개방대를 제외하더라도 1.3편 수준에 머물렀다.
또 소속교수의 논문 발표량이 1인당 1편에 못미치는 대학이 전체의 47.9%에 달했고 0.5편 미만도 26.9%나 됐다.
평균 논문편수가 최저수준인 대학은 1인당 0.02∼0.2편으로 연구빈곤현상을 극단적으로 나타냈다.
교수 1인당 총저서수(번역서 포함)는 평균 0.2권으로 5년마다 책 1권을 써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PUBLISH OR PERISH」(논문을 쓰지 않으면 도태된다)라는 미국 대학의 금언은 우리 대학에서는 전혀 무관한 일임을 알 수 있다.
교육부 집계에 의하면 88년 국제저명학술지에 게제된 우리나라 대학 교수의 논문은 1천2백70편으로 세계 38위.
언어 등 환경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미국 33만5천8백편,영국 7만1천1백편,일본 6만9천2백편과는 너무나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 중국 7천3백40편,대만 1천8백편,이집트 1천5백편에도 뒤처져 있는 실정이다.
서울대의 경우 90년도 연구업적을 보면 교수 1천3백55명이 3백13편의 단행본과 논문 2천9백57편을 펴내 1인당 연구업적편수는 2.41편이다.
그러나 자료를 제출치 않는 교수가 2백94명에 달했고,연구업적이 양적으로 이공계에 치우쳐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해동안 논문을 쓰지 않은 교수도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수는 같은해 총 4백99편으로 1인당 0.47편꼴. 이중 서울대 공대가 1백46편,1인당 1.12편으로 편중현상을 보이고 있다.
교수연구업적을 집계하는 기준이 통일되지 않아 대학간 비교가 어려운 실정이고 특히 게재학술지의 질을 비교하는 객관적 평가수단이 없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해외 저명학술지는 1년여의 논문심사과정을 거쳐 논문을 게재하고 있으나 국내학술지는 논문이 부족해 발간이 지연되기 일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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