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 존중하는 경제통 실용주의자/중학중퇴 직공거친 입지전적 인물크레송 총리와 후임으로 프랑스 정부를 이끌 피에르 베레고부아 총리(66)는 타협을 존중하는 실용주의자이며 경제의 능통한 각료출신이다.
사사건건 타정파와 불협화를 일으켜온 크레송을 대신해 그가 총리가 된데는 사회당이 향후 정치노선을 타협쪽으로 잡았음을 뜻한다.
그는 지난 88년 재무장관에 취임한 이래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고질적인 고인플레를 3%이하로 끌어내렸으며 프랑스화 안정에도 탁월하능력을 발휘했다. 때문에 베레고부아는 한손으로는 야당과 악수를 나누고 한손으로 강력한 경제활성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이주민 후손으로 노르망디 출신인 베레고부아는 엘리트스쿨 출신의 대부분 프랑스 정치인들과는 달리 철도부설 기술자·직공을 전전한 밑바닥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 학력은 중학교 중퇴.
그는 이같은 출신배경 때문에 「노동자의 꿈」으로 미화되고 있으며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사회당 정권에 저소득층의 지지를 이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베레고부아는 지난 1958년 당시 「자치사회당」의 창당멤버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전에는 활발한 노동운동을 벌인 노조간부였다. 그리고 지난 7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오늘날의 사회당으로 발전한 중도좌익 성향의 2개 단체를 통합하던때부터 참모역할을 해 미테랑과 막역한 사이가 됐다.
지난 81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베레고부아는 그의 측근으로 발탁됐으며 그후 82년부터 84년까지 사회문제 장관,이어 84년부터 86년까지는 재무·경제장관을 거쳤다.
지난 88년 5월 에디트 크레송 여사가 총리직에 오른후 일본의 통산성(MITI)을 본따 기존의 경제·재무장관직을 경제·재정·예산장관직으로 확대,개편했을때 베레고부아는 개편된 장관직에 복귀,프랑스 경제를 이끌어 왔다.<조상욱기자>조상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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