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반한 3당통합 심판/밀실공작정치 이젠 안통해민주,즉 민이 주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방편으로서 의회민주주의라는 것이 가장 적합한 것이냐하는 것에 대해,철학도인 나에게는 항상 의문의 여지는 남는다. 그러나 서구라파역사의 장을 인류보편사의 한 실험장으로 생각할때 그 역사가 오랜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제시한 이 의회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정당성을 이제 누구든지 부정키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부작용은 있다해도 그만큼이라도 진실을 축적해온 여하한 역사의 대안을 찾기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집중제도라고 하는 사회주의적 체제도 결국 뷰로크라시(관료제)의 권위주의와 몰가치적 비효율성때문에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붕괴되어버린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의회민주주의보다 구체적으로는 「선거」라고하는 괴이한 제도,과거의 「임금님」들을 백성인 내가 종이쪽지로 뽑는다고 하는 이 요상한 제도는 우리국민에게 있어선 매우 낯선 행태에 불과했다.
나 국민이 어떻게 어떠한 원리나 이념에 의하여 주권(주인된 권리)을 행사하느냐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구체적인 비전이나 막연한 가치관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요번 3·24총선은 이 조선땅에도 의회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실험이 이제 그 실험단계를 지나 삶의 행태로서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매우 고무적이고 희망찬 실마리를 우리 모두에게 안겨주었다.
○무질서속에 핀 질서
요번 총선에 대해 식자들은 누구든지 다음과 같은 말을 퍼부었다. 『개판이다』『나른하다』『불투명하다』『혼선이다』… 그런데 누구든지 가장 불투명하다고 여겼던 선거가 가장 투명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가장 카오스(무질서)의 장이라고 여겨졌던 선거속에서 가장 코스모스(질서)적 선택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가장 낮은 민도의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여겼던 선거의 장이 가장 높은 민도의 수준으로 이행했던 것이다.
이것은 다름아닌 민중의 승리요,상식의 승리다! 가장 불투명한 가운데서 배태된 투명한 결과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잘못된 것」을 광정하려는 대중적 삶의 의지(Will to live)인 것이다. 산다고하는 의지처럼 투명한 것은 없는 것이다. 조선의 사람들은 위대하다. 그들은 정체를 모르고,그들은 선과 악을 분별할줄 알며,그들은 잘못된 것을 되돌이킬줄 안다. 조선사람들의 민주의식은 최소한 옆나라 일본사람들의 민주의식보다는 아주 높은 민도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이 제아무리 정교한 기술문명의 능률성을 자만하고 있다할지라도 텐노헤이카와 지민토(자민당)를 껴안고 있는 한 인류에게 어떠한 정치적 비전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은 정치적 후진국이다.
○민주세력진출 고무적
요번 선거에서 두말할 나위없이 가장 「피를 본」사람은 노태우다. 그 다음이 김영삼이다. 그 다음이 김종필이다. 다시 말해서 3당통합이 무효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정」을 「민자」로 만들고,「민자」를 다시 「자민」으로 만들려고 획책한 어리석은 자들의 자기기만적 음모가 결국 허망한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천심은 만천하에 폭로한 것이다.
87년 민주화의 열기에 대한 최대의 반역도는 양김이다. 그러한 양김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중은 김영삼이라는 1김을 용서하고 그에게 아낌없는 상식의 선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대권에 눈이 먼 김영삼은 그 민중적상식의 선택을 배반하고 노태우와의 밀약을 근거삼아 「민정」을 「민자」로 만드는 주체노릇을 했다. 그래서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만드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던가? 계파간의 불신과 갈등,음모,그것이 잉태시킨 밀실협잡정치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공작정치에 혐오감을 느낀 국민들은 또다시 여대야소를 여소야대로 되돌려버린 것이다.
몇몇 정치인들이 제아무리 밀실공작으로 의석을 조작해도 우리국민은 국민의 상식적 기대를 배반하는 배신자들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역사의 신의 반석을 과시한 것이다.
민주당의 선전도 기대이상의 것이지만,민주의 선전은 고답적 양김시대의 유물로서의 득표에 그 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연합세력의 줄기찬 노력에 의하여 이룩된 야통에 음공이 있는 것이고 보면(실제로 이부영계열의 선전은 요번 선거에서 괄목할 만한 것이다),3·24총선의 실상은 민주의 승리라기 보다는 민자의 참패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 있다. 그런데 민자의 참패를 야기시킨 주인은 민주의 확대가 아니라,자체세력의 분열로 야기된 무소속과 국민당의 득세였다. 「국민」이라고 해야 정주영으로 상징화되는 군사독재시절의 유물로서의 권력지향적 인간상과,이주일과 김동길로 상징화되는 대중시대의 탤런트가 그 이미지의 주종을 이루는 것이요,무소속이래야 모두 민자공천탈락의 비분강개지사 내지는 5공의 잔당일뿐이다. 그러니 그것이 어떠한 새로운 이념질서의 등장에 의한 기존세력의 붕괴가 아님은 명약관화하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여당이든 야당이든지를 불문하고,이제 정당이라고 하는 정치체제의 형태가 더이상 소수의 권력자들의 밀실공작으로는 유효치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예시하는 것이다. 권력의 상부적 결정이 이제는 하부로 그대로 내려갈 수 없는 사회,어떠한 상부의 결정도 이제는 하부적과정에 의하여 그 정당성 여부가 시험되어야만 하는 사회구조로 우리 역사가 진입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정주영이 아무리 노망기가 들어 발호한다 하더라도 이제 그를 폭력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권위는 부재하다는 우리사회의 가치적 다원성이 입증된 것이다. 밀실조작으로 공천에서 밀어내도 이제는 될 사람은 다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반성은 바로 「당내민주화」라는 새로운 과제,즉 「정당의 현대화」라는 새로운 정당정치의 기반을 촉구하는 것이다. 과두체제나 1인독재에 의한 당내의 합리적 과정(rational process)이 무시된 권력구조가 근본적으로 지양되어야 하며,또 공천과정 그 자체가 민중에 뿌리를 박은 공개적이고도 정당한 경선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요번 선거가 예상대로 투표율이 사상최저였음에도 불구하고 여권의 참패가 기록된 것은(기권자는 물론 식자층에 많다),이제 선거의 주체인 국민대중이 지식의 고하를 막론하고 어느 정도 최소한의 합리적 판단을 내릴줄 아는 시대로 역사의 장이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당 실패의 교훈도
이와 관련하여 민중당의 영패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이제 화석화되어버린 이념만의 공회전은 청산되어야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80년대의 진보세력이 이룩한 역사적 공적이 결코 무산되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도기적 안티테제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진보임을 자처하는 세력들이 그 진보성의 뿌리라고 여겨져온 민중들로부터 가장 비진보적인 낙후세력으로 외면당하는 현실은 단시 총선결과에 의한 유추로써 한국의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역사적 현실이 체제밖으로부터의 체제의 도전을 무의미하게 만들만큼,체제내의 합리적 세력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는 고무적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체제밖에서 천리를 뛰는 것보다도 체제안에서 참다운 개벽의 일보를 움직이는 것이 더 가혹한 고난의 길이라는 나의 지론을 좀 심각하게 고민해 주기를 바랄뿐이다.
이리 하숙방에 쑤셔박혀 있다가 아무래도 선거는 해야겠기에(찍고 싶은 사람은 없었지만)서울 올라와 한표를 던지고 난 다음날 새벽,들려오는 소식에 귀를 기울여보니 복음이라,결코 지성의 기대를 좌절시키는 조선의 역사는 아니었다. 밥맛이 절로 돌고 살맛이 난다. 지역성의 타파라는 반가운 실마리도 엿보이고…,우리 역사는 최소한의 양식은 지킨 것이다.
금권타락,부재자투표조작운운이 비사실은 아니로되,그래도 공명한 선거풍토가 정착되는 한 계기임에는 부정의 여지가 없으리라. 여권참패의 제일등공신인 노태우 대통령께서 지리멸렬하게 세상을 끌어오신 덕분으로 이만큼이라도 공명한 세상이 되었다면 우리 노태우 대통령님의 역사적 공과는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하고,경복궁뒷전에다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약력
고려대·국립대만대·일본동경대·미국 하버드대 졸업. 고려대학교 철학과교수 역임,현재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본과 1학년 학생. 저서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기철학산조」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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