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송아지」 만들어 드립니다”/23년 경험… 암소생리 한눈에 “척”/수정작업 손끝감각에 전적의존/수소정액값 3천∼30만원 “천차”인공수정법이 발달하고 크게 보급된 덕분에 적어도 가축들에 관한한 「부모만한 자식이 없다」는 속담은 옛말이 돼버렸다.
암소의 혈통과 생리·건강상태 등을 잘따져 공인된 우량씨받이 수소인 종목우의 정액을 인공수정하면 거의 어김없이 훌륭한 생산능력과 우람한 체격을 지난 2세가 태어난다. 가축인공수정사협회 사무국장 경기문씨(44)는 23년동안 6만두가 넘는 우량소를 「만들어낸」 최고의 인공수정사다.
인공수정사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소의 생태와 혈통 유전학에까지 식견을 갖고 있어야 하므로 경씨는 축산업의 미래의미까지 포함된 「가축개량사」란 호칭이 훨씬 격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69년 충남 보령의 대천실업고 축산과를 졸업한 경씨는 농협중앙회 가축인공수정소에서 교육을 받고 면허를 딴뒤 이듬해부터 주로 소의 인공수정일을 해왔다.
당시만 해도 「인공수정하면 귀한 소를 버린다」는 인식이 팽배해있을때여서 경씨는 소주인들에게 막걸리 대접을 해가며 무료 시술을 해야 했으나 한번 어미소보다 훨씬 잘난 새끼를 본 농가에서는 택시를 대절해 모셔갈 정도로 대접이 바뀌었다. 현재도 경기 안양시 호계동 집에서 많을 경우 하루 10여차례 이상씩 『우리 소가 암내를 내니 와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경씨가 목장에 도착해 맨처음 하는 일은 수정을 할만큼 발정했는가를 판단하는 일인데 노련한 그는 첫눈에 암놈의 발정상태를 가려낸다.
발정한 소는 울음소리부터 평소보다 크고 흥분돼 있으며 신경이 예민해져 조그만 소리에도 귀를 쫑긋거리는가 하면 다른 소를 추근거리는등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수정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수정적기를 판단하는 것인데 모호한 이론보다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손끝의 감촉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우선 비닐장갑을 낀 손을 직장에 넣어 얇은 창자막을 사이에 두고 생식기를 더듬어 내막염등 이상여부를 확인한뒤 연필굵기만한 수란관끝에 달린 밤톨모양의 난소를 만져 말랑말랑한 난포가 곧 터져버릴 것 같은 「감」이 오면 바로 수정작업에 착수한다.
큰 주사기모양의 정액주입기를 자궁에 밀어넣어 손끝으로 자궁도달상태를 확인한뒤 수정시킨다.
발정기에 잔뜩 예민해진 소를 놀라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자칫 잘못해 흥분한 소의 발길질에 채이는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씨의 지프에는 축협중앙회로부터 공급받은 국내외 최우량품종 수소 2백50여마리의 정액을 보관한 통이 실려있다.
정액은 이 통안의 액체질소에 의해 영하 1백96도의 초저온으로 냉동보관돼 있다가 수정받을 암소에 따라 혈통·체형 능력종합지수·유전적 특성·예상유전자 전달 능력 등을 면밀히 판단해 선택해 쓴다.
정액의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국내종모우정액은 일회수정량이 3천5백원 정도인데 비해 최우량종으로 알려진 미 「블랙스타」의 수입정액은 30만원대를 홋가하기도 한다. 정액값외에 한번 인공수정료는 3만원정도이다.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수정에 실패할때는 경씨는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다.
이런 소는 수첩에 꼭 기록해 두었다가 20일뒤 찾아오는 재발정때 아침,저녁으로 확인 수정해준다.
그러나 간혹 쌍둥이라도 태어나는 날이면 일요일도 없이 대기상태에 있어야 하는 피곤함도 싹 가셔버린다.
경씨는 『요즘이야말로 인공수정사들의 땀과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고품질의 가축개량만이 우리 축산업을 UR의 태풍속에서도 지켜낼 유일한 바람막이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짧은 인공수정 역사에도 불구,수치상으로는 수정률이 젖소 99%,한우 97%의 세계 최고수준에 오를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했으나 정작 인공수정사는 신분보장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어 수정사들의 현실처우 개선이 현재 경씨의 가장 큰 소망이다.<이태희기자>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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